[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를 보신 후) 좋은 말씀 많이들 해주시는데 지금은 귀에 하나도 안 들어옵니다"
나홍진 감독은 신작 언론시사회 이후 쏟아진 호평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개봉이 8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마지막까지 영화를 만질 것이라고 전했다. 나홍진 감독은 인터뷰 쉬는 시간 틈틈이 스태프들과 통화를 이어가며 작업 상황을 체크했다.
10년 만에 내놓는 작품인지라 긴장도는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연출자답게 개봉 직전까지 완성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호프'는 나홍진 감독의 영화 중 유일하게 CG 크리처가 등장하는 작품이다. 그것도 아주 큰 비중으로 말이다.
생애 첫 SF, 모든 것이 새로운 도전이었을 터.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도 지적 사항은 재미나 작품성이 아니었다. CG에 대한 아쉬움이 압도적 비중으로 높았다.
단언컨대, '호프'가 재미있다면 그건 CG의 완성도 때문이 아니다. 또한 '호프'가 재미없다면 그것 또한 CG의 완성도 때문은 아니다. 비록 이 작품이 SF로 분류되고 있지만 '호프'는 CG의 완성도와 재미가 비례하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를 보면 누구나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증은 있다. 우리나라 CG의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는 작품이라는 것. '호프'는 한국 영화 사상 최대인 7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 예산에 CG의 비중은 여느 작품보다 높다. 지난 6일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확인한 '호프'는 한국 영화 CG 기술의 진일보인 동시에 한계를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영화에는 총 두 번의 장대한 추격전이 등장한다. 쫓는 외계인과 쫓기는 인간이 보여주는 가공할만한 파워와 속도의 추격전이다. 영화는 시작 후 50분간 외계인의 존재를 보여주지 않는다. 등장이 예정된 존재에 대한 위협과 공포감은 오직 사운드로만 느낄 수 있다.
보는 이들의 긴장감을 극한으로 올려놓은 뒤 마침내 등장한 외계인의 첫인상은 놀라웠다. 다만 이 외계인이 마을 휘젓고 다닐 때 어우러짐은 다른 문제였다. 전라남도 해남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구현한 수준 높은 미술과 외계인 크리처의 조합은 다소 이질적으로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 후반부 숲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또 다른 외계인과 성기(조인성)가 벌이는 추격전의 완성도는 이전 어떤 한국 영화에서도 못 보던 그림이다. 이때 등장하는 외계인 크리처들의 완성도는 빼어나다. 루마니아의 울창한 숲과 그린과 카키 조합의 피부톤을 자랑하는 크리처의 조합 때문인지 동떨어짐 없이 어우러져 할리우드를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시퀀스들이 이어졌다. 한 영화에서 이토록 CG 크리처의 완성도가 차이 나는 이유가 궁금했다.
"영화를 보시는 관객들은 마을을 습격한 이들의 정체가 외계인인 것을 압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몰라야 해요. 사실 관객들도 모르고 봐야 하는데 이미 홍보와 마케팅을 통해서 널리 알려져 버렸죠. 단, 영화 시작 후 50분 만에 괴생명체와 마주하는 범석(황정민)은 그 존재가 외계인인걸 모르죠. 범석이는 그 생명체가 호랑이인 줄 알고 있었어요. 난데없이 보라돌이가 나오지 않은 이상 (범석이 입장에서는) 뭐가 나와도 상관은 없어요. 제 생각에는 '외계인이 나오겠지'라고 짐작을 하고 보는 게 이질감의 원인이 아닐까요. 그걸 목적으로 디자인했거든요. 외계인임을 한눈에 느끼지 못하도록요. 그래야 이 스토리가 그들의 정체를 알아가는 이야기가 되는 거니까요. 그게 1차적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나홍진 감독은 시놉시스 상에도 '호랑이의 출현'이라는 최소한의 정보 노출을 했지만, 칸영화제 선공개와 마케팅 과정에서 외계인의 등장이 알려진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는 창작자의 예민함일 뿐 영화의 주요한 정보를 숨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나 감독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영화를 만든 책임자로서 보다 냉철한 자기 점검으로 첫 번째 외계인 CG의 퀄리티가 다소 떨어지게 된 기술적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저는 CG 자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해요. 다만 이놈이 대낮에 격렬한 액션을 벌인다는 거죠. 그리고 굉장히 빨리 달린다는 겁니다. 기술적으로 고속 촬영을 계속해줄 수 없고 노멀 프레임으로 이 피사체를 비추다 보면 모션 블로우가 엄청 걸려요. 뭉개지는 거죠. 만약 CG가 아닌 배우들이 그 속도로 달리면 보시려고 해도 안 보일 거예요. 보려고 하니까 이상해 보이는 거죠. 저희 촬영지가 해남이었잖아요. 바닷가의 날씨는 정말 변화무쌍해요. 해가 졌다가 떴다가 아주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홍경표 촬영감독님은 그걸(자연광) 매우 중요시하는 분이에요. '곡성'때만 하더라도 "홍진아, 기다려야 해. 지금은 안돼. 기다릴 줄 알아야 해"이러시더니 이번엔 "괜찮아. 하늘은 원래 그런 거야. 해도 떴다가 구름도 꼈다가... 빨리 찍고 가자"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하다 보니 해가 떴다가 졌다가 구름이 몰려왔다 사라졌다가... 그러다 보니 저희가 찍어놓은 컷들이 일관성이 없었어요. 근데 그걸 일반적으로는 못 느끼잖아요. 그런데 크리처는 영향을 받아요. 백주 대낮에 외계인을 달리게 한 제 잘못이죠 뭐"
외계인 크리처의 디자인도 인상적이다. 특히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한 마베이요는 몸의 형태를 수시로 바꾸며 여러 외형을 보여준다.
나홍진 감독은 외계인 디자인에 대해 "타블로이드지에 실렸을법한 전형적인 외계인의 모습으로 시작했다가 계속 진행하며 변화와 진화를 거듭했습니다"라며 "어느 영화에선 이렇게 했고, 아직 안 나온 영화는 이렇게 하고 있다더라와 같은 정보와 트렌드를 계속 수집해 갔고요. 그러다가 연기할 배우들하고 매칭을 하면서 큰 변화를 주다가 여기까지 온 거예요. 이놈의 변천사는 8~9년간 바뀐 거예요"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이날도 돌비 비전 작업 마무리를 위해 작업실로 향했다. 이 작업을 마무리하는 대로 미국을 다녀올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역시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행보다.
'호프'를 구상하고 만든 나홍진 감독의 비전은 명확했다. '액션으로 스토리를 느끼게 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 나홍진 감독의 영화적 지향은 달성됐다. 관객은 극장 안에서 사운드와 비주얼을 통해 호포항 마을 한복판에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의 긴장감과 쾌감도 생생하게 전달된다.
영화는 오는 7월 16일 개봉한다. 특별관 관람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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