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집단지성으로 움직이는 생명체에 맞서는 인간의 개성 혹은 협력을 다루고자 했다"('군체' 연상호 감독)
좀비 장르에 AI 시대에 맞는 주제 의식까지 입혔다. 이 정도면 상업 영화 아이템으로는 합격이다. 게다가 연상호 감독은 한국 좀비 장르의 개척자이자 'K 좀비' 원형을 만든 장르 마스터다. '부산행'과 '반도'에 이은 좀비 3부작의 대미로 충분한 조건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군체'는 제자리걸음이다.
서울 한복판 초고층 빌딩에서 갑작스러운 집단 감염사태가 발생해 건물이 봉쇄된다. 전 남편 한규성(고수) 교수의 추천으로 세미나에 참석한 생물 공학과 교수 권세정(전지현)은 빌딩 내 상황을 접하고 사태 파악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건물 보안 요원인 최현석(지창욱)은 하반신 장애를 가진 누나 최현희(김신록)와 함께 쇼핑몰을 둘러보다가 사람들을 물어뜯는 기이한 존재들을 마주한다. 테러 신고 전화를 받고 건물에 출동한 경찰 이봉석과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학생도 이 사태 속에서 함께 생존 무리에 속하게 된다.
한국형 재난물은 자연재해만 그리지 않는다. '군체' 역시 건물 안팎에 있는 인간들의 이기와 어리석음이 유발하는 인재까지 다루며 재난 상황의 공포를 극대화한다.
오프닝은 테러를 예고하는 미친 과학자 서영철(구교환)의 전화통화 시퀀스로 연다. 영화의 시간은 단 하루이며, 사건은 빌딩 안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진다. '부산행'과 비슷한 형식이다. '부산행'이 기차라는 공간에서 앞, 뒤로 직진하는 영화라면 '군체'는 빌딩이라는 공간이 주 무대인 탓에 위, 아래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영화다. 폐쇄된 공간에서 퇴로 없이 몰리는 주인공들의 모습과 바이러스에 감염돼 인간을 쫓는 좀비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군체'의 장점은 좀비의 개성에서 비롯된다. 가공할만한 속도로 내달리나 그에 미치지 못하는 지능을 가졌던 '부산행'의 좀비와 비교하면 '군체'의 좀비는 업데이트를 넘어 업그레이드 수준이다. 연상호 감독은 하이브 마인드(Hive Mind: 여러 개체가 하나의 '집단 의식'처럼 연결되어 공동으로 사고·행동하는 개념)를 통해 좀비의 지능이 진화한다는 설정을 가지고 왔다. 이들은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두 발로 걷고, 인간의 행동을 따라 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 여러 명이 합체돼 덩어리로 다니는 탓에 그 움직임이 더 기괴하고 공포스럽다.
연상호 감독은 딥러닝을 기반으로 발전한 AI 시대에서 이 아이디어를 따왔다. 영화 시작과 함께 진화하는 좀비와 그에 따른 행동 양식의 변화는 빠른 전개와 어우러져 강력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군체'는 CG에 의존하는 장르 특성을 탈피해 대부분 사람들이 직접 좀비들의 움직임을 구현해 실감하는 긴장감과 공포를 살려냈다. 현대무용, 발레, 스턴트맨으로 구성된 세 그룹의 좀비 배우들이 만들어낸 체계화된 액션은 독창적이다. 주인공으로서 개인이 어떻게 활약하고 조명받을지에 신경 쓴 이름 있는 배우들과 비교하면, 이들은 얼굴도 이름도 없지만 사건의 본체가 되고자 이야기에 녹아들고자 노력한 협업이라는 점에서 더 박수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폐쇄된 공간에서 좀비들의 공격을 피해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들은 어떤가. 연상호 감독의 의도대로 개별적 특성을 가진 흥미로운 캐릭터들인가라고 묻는다는 선뜻 긍정하기는 어렵다.
물론 재난 영화 속 캐릭터들은 대체로 전형성을 띠기 마련이다. 연상호 감독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지적인 여성 교수, 감염 사태를 일으키는 미친 과학자, 장애가 있는 누나와 그를 챙기는 보안 요원 동생, 편협한 생각과 이기심으로 사람들을 위험에 몰아넣는 경찰, 학교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등 타입화된 캐릭터들을 영화의 주요 인물로 설정했다. 사건의 진행과 함께 이들이 어떻게 반목할지 어느 정도 그려진다.
연상호 감독의 영화는 규모가 커질수록 캐릭터의 매력은 축소되는 경향이 강하다. 사람들의 개성과 성격이 다양하듯 재난 상황 속에서 인간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군체' 속 인물은 악당은 지극이 악당스럽고, 주인공은 지극히 주인공의 전형처럼 정의롭기만 하다. 그리고 상황이 악화되면서 폭주하는 발암캐릭터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들은 라운드별로 등장해 자신들의 역할을 기계적으로 수행한 뒤 퇴장한다.
이와 더불어 영화 초반, 엄청한 개성과 활력을 자랑했던 좀비들도 '인간 백신'을 자처한 서영철이 조종을 시작하면서 진화는 정체되고, 퇴보한 느낌까지 준다. 연상호 감독은 '집단지성'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군체'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명령 체계대로 움직이는 기계화된 바이러스에 가깝다. 이들은 주인공들의 행태에 맞춰 행동 규칙이 들쑥날쑥하다. 초반에는 모든 인물을 다 죽일 것처럼 강력하다가 후반부 되면 주인공들의 활약상을 기다리며, 적당히 죽어준다.
러닝타임은 2시간 남짓이지만 영화가 주는 피로감도 상당하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추격 패턴으로 반복되는 데다 캐릭터들의 매력이 떨어지며 드라마 라인도 빈약하기 때문이다. 중반 이후에는 사건의 전개와 인물의 선택에 있어 개연성 마저 상실하며, 초중반까지 빛났던 장르물의 장점까지 희석되고 만다.
영화는 개인과 집단의 갈등을 초래하는 건 '소통의 부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감염자 집단이 조종자에 의해 한 몸으로 움직이며 강력한 파워를 발휘하는데 반해 생존자 집단은 오해와 불신, 이기심으로 위기를 자초하다 비극을 맞는다. 그러나 감염자 집단 역시 전체주의화된 집단지성의 끝은 파국이라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연상호 감독이 선택한 재난 타계책은 '연대'다.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나누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권세정과 공설희의 연대로 보여준다. 두 사람은 소통의 부재가 야기한 재난을 열린 대화와 지식의 협력으로 이겨낸다.
꽤 흥미로운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군체'는 콘셉트만 두드러지는 오락 영화다. 소재의 신선함은 깊이를 제대로 취하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고, 재미면에서는 반복된 패턴과 안전한 결말로 절반의 성공을 추구하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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