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3일(금)

영화 스크린 현장

[스브수다] '휴민트' 조 윅이 된 조인성…그가 말한 쓸모론

작성 2026.02.12 17:17 수정 2026.02.12 17:34 조회 202

조인성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리더형 배우인 조인성은 개봉을 앞둔 인터뷰 자리에서 늘 분위기를 주도한다. 매 작품 개봉 때마다 "한동안 영진위(일일 관객수를 확인할 수 있는 공식 사이트)의 노예가 돼야 한다"고 푸념하면서도 초조와 불안이 환희와 미소로 바뀔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주연 배우의 책임감이다.

영화 현장에서 발휘하는 리더십과 성실함을 홍보 자리에서 발휘하는 그 에너지도 남다르다. 어느 감독이 이런 배우를 싫어하겠는가. 2026년 한국 영화계의 흥행 지표이자 수작 탄생의 기준이 될 기대작 세 편의 공통분모가 조인성인 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가장 포문은 여는 작품은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다. '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이 '베를린' 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첩보 액션 영화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공간을 공유하며, 남과 북 정예 요원의 갈등과 연대를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베를린'의 스핀오프 격의 영화라 볼 수 있다.

휴민트

조인성은 이번 작품에서 국정원 요원 '조 과장'으로 분해 극을 이끈다. 작전에서 자신의 정보원을 지키기 못했다는 부채감을 가지고 있는 조 과장은 죽은 정보원이 남긴 단서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고 그곳에서 북한 출신의 '채선화'(신세경)를 새로운 정보원으로 포섭한다. 북한 고위층과 러시아 범죄조직이 결탁한 거대한 사건을 추적하는 가운데 보위부 요원 '박건'(박정민)과도 얽히게 된다.

조 과장은 북한과 러시아 범죄조직이 엮인 사건을 추적하는 국정원의 요원이지만 북한 보위부 요원인 박건과 그의 전 약혼녀 채선화를 지켜보는 관찰자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조인성은 자신의 연기한 조 과장을 '외로운 늑대'에 비유했다. 목표물을 정한 뒤 맹렬하게 달려들지만, 사냥을 하지 않을 때는 홀로 사유하는 인물이다. 그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조인성은 조 과장을 말수는 적고 차갑지만, 눈빛은 따뜻하게 표현하며 절제된 연기를 선보였다.

휴민트

"감독님께서 조 과장이 품위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연기에 있어 강조하신 건 '친절하게, 다정하게'였어요. 저도 동의했어요. 수린이나 선화를 대할 때 그게 없으면 조 과장 캐릭터가 입체성이 떨어져 보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어떤 편을 봤는데 탈북자들이 국정원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사랑에 빠진다더라고요. 서울말이 탈북자들에게 다정하고 달콤하게 들린데요. 그런 걸 참고하기도 했어요. 휴민트와의 관계에서 정보만 공유하는 게 아니라 감정까지 교류하는 면모를 보여줘야 캐릭터나 관계성이 입체적으로 보일 테니까요. 액션의 경우 캐릭터의 강함과 강력함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조인성은 '모가디슈', '무빙'에 이어 '휴민트'까지 총 세 차례나 국정원 요원을 연기했다. 조인성은 "미국으로 치면 CIA 요원인 건데 환상이 있는 조직이자 집단이자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론 어떤 선입견도 있죠. 저는 직장인처럼 보이려고 했어요.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인 동시에 휴민트에겐 인간적으로 다가가려고 했달까요. 제 감정이 안보였다고 하셨는데, 스스로 여백의 미를 표현하는데 중점을 뒀습니다"라고 캐릭터 표현의 주안점을 밝혔다.

여백의 미를 추구하고자 했다는 건 연기의 힘을 뺏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인성은 "클로즈업이 많은 영화였는데요.. 클로즈업이 많으면 인물의 감정이 노출되기 쉬어요. 또한 배우 스스로 도취될 때도 많아요. 그래서 무서운 샷이죠. 각도까지 다 계산해서 카메라가 들어가니까. 그래서 더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조 과장은 말없이 상대를 바라볼 뿐이죠. 촬영하면서도 계속 '내가 도취되어 있는 건 아닌지 자기 검열을 많이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휴민트

'휴민트'는 화려한 액션으로 무장한 영화다. 두뇌싸움과 심리전을 병행하는 '첩보물'의 묘미보다는 감정마저 몸으로 표현하는 '육탄전'의 재미가 큰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조인성은 액션의 얼굴이자 핵심과 같은 역할을 한다. 조인성은 류승완 감독의 '존 윅' 아니 '조 윅'이 돼 화려하고 역동적인 액션을 수행한다. 영화에서 조인성은 감정 표현을 최소화한 연기를 선보인다. 언어와 감정 표현을 액션으로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초반 액션신은 감정을 많이 드러냈고, 후반은 서늘하게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게 조 과장의 심리 상태일 거예요. 그 사람의 성장과정일 수도 있어요. (정보원을 잃은) 상처를 휴민트로 극복해 내려는 조 과장의 캐릭터가 보일 수 있도록 연기했어요. 후반 액션은 초반에 비해 좀 더 차분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해요"

대사도 많지 않고, 감정도 잘 드러내지 않은 탓에 주인공임에도 캐릭터가 수동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를 채우는 존재감만큼은 확고하다.

"주인공은 안전하게 극을 받쳐주는 롤이에요. 많은 감독들이 베이스(주인공)에 안전한 사람을 박아놓는 걸 좋아하고 류승완 감독님도 마찬가지예요. 감독님이 이번에는 저를 베이스로 놓고 다른 배우들로 맛있는 음식을 낸 게 아닌가 싶어요. '베이스가 중요하냐' 할 수도 있겠지만 공기가 없어져봐야 중요한 걸 알듯 주인공도 공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공기가 떨어지면 원동력도 사라지잖아요. 안정감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조인성

조인성은 류승완의 새로운 페르소냐다. '모가디슈'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밀수', '휴민트'까지 내리 세 작품을 함께 했다. 심지어 전작인 '밀수'에서는 특별출연으로 등장해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는 등 이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데뷔 25년 내내 톱스타였던 조인성은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자신이 끌리는 작품, 함께하고 싶은 감독이라면 주, 조연의 롤을 가리지 않고 참여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주인공을 계속하다 보니까 모든 신에 너무 제가 많이 나오는 거예요. 어느 순간 그게 너무 버겁더라고요. 과거 '더 킹'을 찍을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왔거든요. 그때도 힘을 뺀다고 뺐는데 지금 보니 힘이 많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최근 작품인 '밀수', '무빙'은 짧게 나왔잖아요. 그럴 때는 강한 연기가 임팩트가 있죠. 노희경 작가님의 조언이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어차피 대본이나 관객들 (주인공인) 너를 다 따라가고 있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겹겹이 구축돼 있기 때문에 버릴 것 버리고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제 입장에서는 대사가 너무 좋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준 건데 '앞의 대사는 사실상 마지막 한 줄을 위해 깔아놓은, 다 버리는 대사야. 앞에서부터 힘을 주면 (연기) 과잉이 되는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릴 때는 다 표현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다 버려라. 하나에만 방점을 찍어주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물론 그건 노 작가님 스타일일 수 있는데 저도 그분의 말에 동의를 했고, 거기에 가치를 두게 됐어요. 안 그래도 진하게 생긴 얼굴인데 뭘 더 하려고 하면 보시는 분도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그래서 덜어내자, 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어쩌면 가치관과 태도의 변화가 영화인들 눈에도 보였을지 모른다. 40대가 된 조인성을 찾는 거장들이 늘고 있다. 조인성은 올해 류승완 감독의 '밀수'에 이어 나홍진 감독의 '호프',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으로 관객과 만나게 된다.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서 매너리즘에 빠지기 마련이지만 조인성은 스스로의 쓸모를 증명하며 20 ,30대에는 인연을 맺지 못했던 특급 감독들의 러브콜은 계속해서 받고 있다.

조인성

"기자님의 말씀이 맞아요. 배우는 잘 쓰여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비열한 거리', '더 킹', '안시성' 때도 소위 1번 주연 역할을 했는데 부담이 컸어요. 특히 '안시성'때요. 예산이 큰 영화였잖아요. 손익분기점에 대한 책임감이 컸어요. 내가 깜냥이 안되는구나 싶기도 했고요. 역할의 크기 보단 나의 쓸모를 인정받고 싶어서 대본도 안 보고 '무빙', '밀수'를 한 거예요. 오히려 역할이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 그럼 부담감이 좀 덜하잖아요. 다른 배우들과 앙상블을 이루면 되니까요. 이번 작품은 오랜만에 1번 주인공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박)정민이도 있고, (신)세경이도 있고, (박)해준 선배도 있으니 다 같이 만들어 간다는 마음으로 했어요. 물론 선배로서 현장에서 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건 그거대로 하는 거고요. 특별한 노력보다는 작게라도 쓰이겠다는 마음을 갖다 보니 좋은 기회들이 찾아온 것 같아요"

조인성은 예나 지금이나 멋진 외모를 소유한 배우지만, 이제는 잘난 외모를 넘어 믿음을 선사하는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류승완 감독과의 세 번째 작업,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파워풀하며 독창적인 감독인 나홍진과의 첫 작업, 작가주의 거장 이창동 감독과의 작업 모두 관객의 기대감을 부르는 협업이다.

"'호프'에서는 글로벌 배우들과 작업을 했고, '가능한 사랑'에서는 전도연, 설경구, 조여정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호흡을 맞췄어요. 근데 현장이나 연기를 하는 건 똑같아요. 바깥에서 그 조합에 의미를 둬서 그렇지 영화를 잘 만들어내야 한다는 내부의 입장은 여느 영화와 다르지 않아요. 제가 그 작품을 통해서 글로벌 스타가 되겠어요? 단언컨대 그런 일은 없어요. 희박합니다. 작품이 사랑받거나, 감독님들이 좋은 평가를 받기를 바랄 뿐이에요. 저는 배운다는 느낌으로 했어요. 이제는 어느 현장에서 가도 후배들과 일할 일이 더 많은 나이인데 나홍진 감독님, 이창동 감독님과 작업하면 뭐라도 배우지 않겠어? 그런 마음으로 현장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호프

가치관의 변화는 관객을 향한 마음도 큰 기반이 됐다. 더 이상 저 멀리서 환상만 파는 스타가 아닌, 관객 가까이서 숨 쉬는 친근한 배우로 다가가겠다는 자세의 변화였다.

"이제는 스타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 이전에는 이른바 신비주의 콘셉트의 스타시스템이 있었다면 코로나19 이후에는 관객과 얼마나 가까워지느냐가 중요해진 분위기가 됐어요. 다가가지 못하면 잊히니까요. 어떤 식으로든 관객에게 가까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라는 작업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여기에 후반 작업까지 생각하면 8개월~1년 정도 더 걸리거든요. 역할이 작더라도 날 필요로 하는 작품, 역할이 있다면 쓰임을 받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최근 작품의 출연 빈도수가 늘었죠. 다만 관객이 저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있으니 대본을 고를 때 저부터 재밌게 읽은 작품을 하자는 생각이에요. 다행히 최근 좋은 감독님들의 러브콜이 들어왔고 안 할 이유가 없었죠. 역할이 크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노 작가님과 작품을 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생긴 가치관의 변화를 최근 이창동 감독님과 작품을 하면서 '내가 이 방향으로 가는 게 맞았구나'를 느낀 기회가 있었어요. 대화를 나누고 디렉팅을 받으며 더 확신하게 됐죠"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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