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2일(목)

스타 끝장 인터뷰

[스브수다] 공유 "저도, 남들한테 꺼내 보이기 싫은 아픔이 있어요"

강선애 기자 작성 2024.12.11 16:24 조회 2,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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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배우 공유의 로맨스는 아름답고 찬란했다. 성별도 설령 외계인이라도 상관없으니 갈 데까지 가보자고 사랑을 맹세했던 '커피프린스 1호점', 날이 좋든 안 좋든 너와 함께 한 모든 날이 눈부셨다는 '도깨비' 등 길이 남을 레전드 로맨스 드라마로 평가받는 작품들 속 공유는 설렘 그 자체였다.

눈이 부시게 밝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속 근사하게 멋진 남자주인공과 잘 어울리는 공유가 오랜만에 어둡고 우울한, 하지만 이 또한 지독한 사랑의 한 단면임을 보여주는 멜로 연기로 돌아왔다. 지난달 2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미스터리 멜로 작품 '트렁크'를 통해서다.

'트렁크'는 어느 날 갑자기 호숫가에 떠오른 수상한 트렁크를 둘러싼 이야기로, 그 안에 감춰진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들의 감정의 파고를 그린다. 비밀스러운 계약 결혼으로 뒤엉킨 남녀들의 관계의 변화 속 혼란스러운 감정을 짙고 농밀하게 담아냈다.

공유는 극 중 전처 이서연(정윤하 분)을 잡기 위해, 아이러니하게 노인지(서현진 분)와 기간제 결혼을 하는 남자 '한정원' 역을 맡았다. '트렁크'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느낌을 주는 작품인데, 공유가 연기한 한정원 캐릭터 또한 메마르고 아픔이 가득한 인물이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가 대중적으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공유는 여기서 오히려 더 '현실'을 내다봤다.

"대중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얘기를 선호하진 않죠. 전 프레임 안에 있는 것들은 모두 허구이고 창작물, 만들어낸 상상물이라 생각해요. '트렁크'가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했어요. 보통 연애를 할 때도 그 관계 속엔 어두운 면이 있잖아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밝게만 다뤄지고 미화되는 게 많다고 봐요. 보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현실에 없지만 하나의 휴식이 되는 게 영화나 드라마의 역할 중 하나라 생각해요. 전 연기하는 사람이니까, 어두운 면도 얘기하고 싶었어요. 관계나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보여주고, 그런 연기도 경험해보고 싶었죠. 세상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잖아요. 다소 어두울 수는 있겠지만, 해볼 만한 이야기라 생각했어요. 정원이란 인물이 왜 힘들고 아픈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또 어떤 면에서는 동질감 같은 것도 느껴 캐릭터에 마음에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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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속 정원은 막강한 재력에 음악 프로듀서로서 명성도 갖췄지만, 어릴 적 폭력적인 아버지의 감시와 지배 밑에서 자란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적으로 아주 위태로운 인물이다. 이런 미약함이 전처 서연과의 관계에 집착하고 이를 사랑이라 믿게 만들었다. 공유는 이런 정원의 아픔에 동질감을 느꼈다고 했다.

"제가 제 마음을 들여다봤을 때, 저 깊은 곳에 저만의 고충 같은 게 있을 거잖아요. 그런 부분이 정원의 아픔에 동질감을 느꼈어요. 물론 제가 외적으로 무슨 트라우마가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본질적으로 저란 사람도, 남들한테 꺼내 보여주기 싫은 아픔들이 있지 않겠나, 그런 동질감이죠. 그래서 정원에게 연민을 느꼈던 거 같아요."

위태롭고 메마른 정원의 삶에 계약 결혼으로 인지가 찾아온다. 정원은 인지로 인해 안정감을 느끼고, 그런 안정적인 인간관계가 주는 위로에 상처를 치유해 간다. 인지 또한 5년 전 큰 아픔을 겪은 후 계약 결혼을 업으로 받아들인 상처투성이 인물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며 성숙한 사랑을 키워나간다. 공유는 이런 정원을 연기하며 이상적인 관계, 사랑의 형태에 대해 깊이 고뇌했다.

"정원이를 쫓아가고 주변 인물들과 이야기 전체를 보니, 저한테 '너가 믿는 사랑이란 건 뭐야?'라고 질문하는 것 같았어요. 제 과거, 제가 맺고 있던 관계들, 비단 연인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맺는 모든 관계들을 생각해 봤어요. 제가 정원으로 몇 개월을 살고 이 작품을 떠나보내고 나니까, 비로소 제가 호기심과 연민과 동질감에서 시작된 그 마음들, 어렴풋이 이 작품을 보는 사람이 느꼈으면 하는 그 마음은, 좀 이상적일 수도 있는데 '존재의 사랑'에 대한 것 같아요. '소유의 사랑'과 '존재의 사랑'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유의 사랑'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스스로든 주변이든 힘들게 할 수 있고, 그 관계를 망칠 수도 있어요. 옆에 있는 누군가를 소유하고 지배하고 통제하려 하지 않고, 그런 것에 있어서 성숙하고 의연할 수 있는 게 '존재의 사랑' 같아요. 제가 원래도 관계나 사랑에 있어서 지향했던 부분인데, 이 작품을 끝내고 다시 정리가 됐어요. 조금 더 곱씹게 됐죠. 사랑을 해도 그렇게 하고 싶고, 그런 성숙한 유형의 인간이 되고 싶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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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는 정원과 인지가 보여주는 '존재의 사랑', 위태로운 서로를 구원해 주는 사랑이야기다. 두 캐릭터를 소화한 공유와 서현진은 섬세한 연기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공유는 상대 역으로 호흡을 맞춘 서현진을 '지독하게 연기하는 배우'라 평했다.

"예전에 백상예술대상에 같이 시상하러 나갔을 때 '같이 연기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시상식 작가분이 써준 대본이었어요. 언젠가 현진 씨와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만 했었는데, 이렇게 생각보다 빨리 하게 될 줄은 몰랐죠. 생각하는 가치관이나 결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 보니, '트렁크'에서 조우하게 된 거 같아요. 전 서현진이 아닌 노인지는 상상이 안 돼요. 정확하고, 얕지 않고,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깊은 사람이라는 걸 현장에서 느꼈어요. 또 굉장히 섬세하고 지독하게 연기를 해요. 제가 많이 배우기도 했고, 영감도 받았어요. 우리 둘의 시너지가 좋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연기하는 톤이 달라서 이게 안 맞으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도 했어요. 근데 다른 톤을 구사하는 게, 인지와 정원으로 만났을 땐 더 밸런스가 좋더라고요. 서현진이란 배우는, 정말 지독하게 연기해요. 왜 살이 안 찌는지 알겠더라고요."

출연했던 로맨스 드라마들의 대히트와 '핑계고' 같은 예능 콘텐츠에서 선보인 모습들 때문에 공유에게선 밝고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그 본연의 이미지와 '트렁크'의 한정원과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다. 공유는 '트렁크'를 통해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동안 밝은 면만 보였으니, 이젠 어두운 면을 보여야겠다' 그렇게 계획적으로 접근한 건 아니에요. 제가 깊게 느껴보고 싶은 감정을 따라가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게 제 마음 속이 밝지 않을 수도 있죠. 그만큼의 그릇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좀 더 다양한 것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요. 그 작업을 하면서 제가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고요. 그건 프레임 안이니까 할 수 있는 얘기인 거 같아요. 그게 제가 하는 업의 매력이고요. 어쨌든 허구이고 상상이니, 거기서 다른 인물의 삶을 대신 살면서 그 사람이 느끼는 행복과 고통을 제가 대신 느끼는 거죠.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게 다 저한테 남더라고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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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히 따져보면, '트렁크'는 정원보다 여성인 인지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는 작품이다. 과거 영화 '82년생 김지영'처럼 여성 원톱 작품에 출연한 경험이 있는 공유는, 이번에도 여주인공을 '받쳐주는' 역할을 자처했다. 이름값 높은 톱 남배우들이 보통 타이틀롤을 선호하는 것과 다른 행보다.

"저도 예전엔 타이틀롤을 맡고 싶단 욕심이 있었죠. 근데 어느 순간, 중요한 건 그게 아니란 걸 느끼게 됐어요. 제일 중요한 건 본질적으로 '내가 이 이야기가 궁금한가' 예요. 제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의 타이틀롤은 저한텐 큰 의미가 없어요.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에 들어가 연기하는 게 점점 더 불편해지더라고요. 가짜 같기도 하고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던 '배우'라는 어떤 알맹이, 지향하는 부분에 나이가 들수록 좀 더 가까워지고 있는 거 같아요. 그게 작품 선택에도 미치고 있고요."

연기 경력이 20년이 넘은 공유는 그 세월만큼 쌓인 연륜으로 배우로서 계속 성장하고 있다. 작품의 흥행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수치나 기록보다,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자신이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들을 작품을 본 누군가가 느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일을 20년 넘게 해 보니,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은 존재하지 않더라고요. 어렸을 땐 '이걸 왜 모르지'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세상에는 다양한 관점이 있고, 그걸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작품 선택에 있어 자유로워졌어요. 그래서 흥행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어요.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잘 닿은 분들에 한해서라도 제가 원했던 마음을 느끼신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그게 저한테 제일 중요한 우선순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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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를 공개한 공유는 연말 또 하나의 넷플릭스 작품 공개를 앞두고 있다. 오는 26일 공개 예정인 '오징어 게임' 시즌2다. 시즌1에서 의문의 '딱지남' 역할로 작품의 글로벌 흥행에 한몫했던 공유는, 시즌2에도 등장한다. 신드롬을 일으킨 흥행작의 '특별출연'이라 아쉬울 법도 한데, 공유는 분량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전 오히려 그 정도 분량이라 너무 재밌었어요. 시즌1 때 감독님이 제 분량이라고 A4용지 한 장을 주셨어요. 구체적인 설명이 있지 않은 인물이라, 그래서 막 '이건 어때? 저건 어때?' 하며 상상력으로 채우는 그 작업이 재밌었어요. 이 작품이 신드롬이 되고 어쩌다 보니 시즌2까지 합류하게 됐고, 이번엔 A4용지 한 장은 아니었어요.(웃음) 근데 이걸 하면서 그전에 연기하며 느끼지 못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이 캐릭터가 타이틀롤로서 극 전체를 끌고 가야 한다는 부담도 없고, 다른 인물과 유기적으로 얽히지도 않아, 제가 드라마 전체를 다 생각하며 연기할 필요도 없어요. 그래서 훨씬 더 자유롭고, 창의력을 발휘하며 할 수 있는 연기라 재밌었어요."

[사진제공=넷플릭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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