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드라마 종영 인터뷰를 진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제 이름보다 드라마 캐릭터 이름으로 더 불리는 것도 처음이에요."
데뷔한 지 30년이나 된 엄정화가 '처음'이란 말을 꺼냈다. 배우로도 가수로도 정점에 올랐던 '올타임 레전드'인 그녀가, '닥터 차정숙'을 통해 다양한 첫 경험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엄정화는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타이틀롤 차정숙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의대를 졸업했지만 전업주부로 20년을 지낸 차정숙이 간이식을 받는 큰 수술을 겪은 후 주변과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1년 차 레지던트가 되어 주체적으로 세상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닥터 차정숙'. 엄정화는 차정숙의 우여곡절을 때론 코믹하게, 때론 감동적으로 연기해 내며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했다. 특히 엄정화의 연기는 '경력단절'을 겪은 이 시대의 모든 차정숙들의 공감대를 형성했고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았다.
차정숙은 엄정화에게도 의미가 크다. 6년 만에 드라마 타이틀 롤을 맡은 엄정화는 이번 작품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배우로서 자신의 미래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부담감이 컸다. 그런 우려 속에서 시작한 '닥터 차정숙'은 JTBC 역대 드라마 시청률 4위를 기록하며 큰 사랑을 받았고, 차정숙을 연기한 엄정화에게 시청자의 응원이 쏟아졌다. 어딜 가든 자신을 '엄정화'가 아닌 '차정숙'이라 불러주는 시민들을 만나며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한 엄정화는 이게 '행복'이란 걸 느끼고 있다.
'닥터 차정숙'의 성공으로 부담과 걱정을 말끔히 씻어낸 엄정화는 이제 다음에 자신이 어떤 작품을 만날지, 설렘과 기대감을 갖고 있다. 이는 시청자도 마찬가지다. 30년이나 대중 곁에 있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올타임 레전드' 엄정화. 그녀의 다음이 기대된다.
▲ 경력 30년, 그럼에도 부담감이 컸던 이유
엄정화는 '닥터 차정숙'으로 6년 만에 드라마 타이틀 롤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이 공개되기 전 그녀는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첫 방송 전에 부담감이 있었어요. 괴로울 만큼 부담감을 느끼다가, 첫 방송하고 다음날 기사들을 챙겨봤는데 내용이 너무 좋더라고요. '엄정화가 차정숙같이 보였다'는 말에 안도감이 생겼어요. 그리고 2회 방송분은 시청률이 두 배로 올랐어요. 그러자 모든 마음의 부담감이, 하루아침에 그냥 기쁨으로 변하더라고요.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는데, 매주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니 진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연기 경력 30년 차로 작품의 성패나 웬만한 반응에는 이골이 났을 엄정화인데. 이번 작품 공개를 앞두고 유난히 더 부담감에 시달린 이유가 뭘까.
"배우로서 이번 작품이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정성을 엄청 많이 기울였죠. '만약 이 작품이 어떤 존재감 없이 끝난다면, 앞으로 선보일 작품도 어려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차정숙은, 그만큼 저한테 중요한 시기에 용기 내서 한 캐릭터예요. 이 작품이 이렇게 사랑받고 응원을 받으니까, 배우로서 저의 시간도 더 응원받고 힘을 받은 느낌이에요."
드라마보다 영화를 주로 해 온 엄정화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영화산업 자체가 위축되고 자신에게 들어오는 영화 시나리오가 줄어든 현실을 겪으며, 이런저런 고민과 걱정을 끌어안게 됐다. 그래서 오랜만의 드라마 작업이 현장 자체는 즐거웠지만, 공개를 앞두고 성패에 대한 부담과 무게감을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음으로 기다린 '닥터 차정숙'의 첫 방송. 다행히 엄정화의 우려는 첫 회 공개 때부터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작품과 차정숙 캐릭터를 연기한 자신에게 쏟아지는 호평 속에, 엄정화는 안도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자신감까지 생겼다.
"이제 자신감도 붙고 기대감이 생겨요. '다음 작품은 뭐가 주어질까' 그런 기대감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해요."
▲ 차정숙 향한 응원, 엄정화의 행복
엄정화는 드라마를 하면서 이렇게 인기를 체감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자신을 "엄정화"가 아닌 "차정숙"으로 불러주는 사람들의 반응이 마냥 신기하다며 웃어 보였다.
"반가워해 주시는 눈빛부터 달라요. 하다못해 집의 경비아저씨도 제게 하트를 날려 주시고 그래요. 어딜 가나 '차정숙이다' 불러 주시고, 대학교 축제에 갔을 때도 혈기왕성한 대학생 분들이 '차정숙'이라고 불러주시더라고요. 그런 데서 인기를 많이 체감해요. 드라마를 하면서 이렇게 캐릭터로 불려지는 게 처음이에요. 그래서 저한테는 너무 큰 의미가 있어요. 제가 차정숙과 동일시된 거 같아서,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차정숙 때문에 힘을 받았다', '나도 경단녀였는데, 용기를 내서 다시 시작해보려 한다'는 DM(다이렉트 메시지)도 많이 받았어요. 제가 그런 영향을 줬다는 것이 기뻐요."
겉으로 보기에도 밝고 씩씩한 차정숙과 닮아 보이는 엄정화는 실제로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좋았다고 자평했다. 차정숙을 응원하는 시청자의 목소리가, 결국에는 자신을 응원하는 것처럼 느껴져 행복했다고 말했다.
"차정숙을 연기할 때 '이건 너무 연기하기 어렵다' 하는 건 없었어요. 차정숙에게 공감하면서, 같이 발맞춰 온 거 같아요. 저와 싱크로율은 좋았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차정숙을 응원하는 건지, 엄정화를 응원하는 건지 모르도록, 응원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많은 분들이 차정숙을 사랑하고 앞으로 잘 나아가길 바라는 게, 저한테도 너무 행복한 일이었어요."
이 드라마를 사랑한 시청자들은 극 중 차정숙이 바람난 남편 서인호(김병철 분)와의 가정을 지키느냐, 힘들 때마다 곁에 있어준 연하의 남자 로이킴(민우혁 분)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느냐, 이 기로에 놓인 차정숙의 선택에 과몰입했다. 결과적으로 차정숙은 서인호와 이혼했지만 로이킴에게 가지는 않았고, 자신만의 병원을 차려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이어갔다. 엄정화는 이런 차정숙의 엔딩에 만족했다.
"전 차정숙이 이혼을 하고 이제라도 자기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기본적으로 남편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다면 모든 걸 다 용서하고 참고 살 수 있겠지만, 차정숙과 서인호는 서로에게 사랑이 남아있지 않은 거 같거든요. 계속 그렇게 사는 건 무의미하지 않나 싶어요. 로이킴을 놓친 건 조금 아깝긴 해요.(웃음)"
차정숙을 두고 최승희(명세빈 분)와 바람나서 혼외자까지 둔 서인호는 손가락질받을 '불륜남' 캐릭터였지만, 배우 김병철의 '밉지 않은' 연기로 오히려 시청자의 지지를 받았다. 엄정화는 서인호를 김병철이 맡은 건 '신의 한 수'였다고 말했다.
"김병철 배우가 캐스팅된 것부터 너무 다행이라 생각했어요. 서인호가 너무 미운 역할인데, 김병철 배우가 한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할지 기대가 됐어요. 역시 회를 거듭할수록, 귀여움을 독차지하더라고요.(웃음) 우리 캐스팅은 '신의 한 수'였어요. 김병철 배우와의 연기 호흡은 너무 좋았어요. 촬영할 신을 앞두고 어떻게 할지 서로 대화하면서 맞춰 가는 게 잘 맞았어요. 무엇보다 오롯이 이 신을 어떻게 살려낼지 함께 고민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김병철 배우는 정말 좋은 파트너였어요. 배우로서, 이렇게 훌륭한 배우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게 저한테는 행운이었어요."
엄정화는 명세빈과도 첫 연기 호흡이었다. 90년~2000년대 비슷한 시기에 배우로서 주목받았던 두 사람이지만, 같은 작품에 출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엄정화는 명세빈과 연기하며 그녀를 응원하게 됐고, 배우자 기도까지 해주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명세빈 씨와 연기 호흡은 처음이었는데, 처음 보고 '와, 명세빈이다!' 했어요.(웃음) 정말 열심히 준비하는 배우더라고요. 자기가 누구라는 걸 다 내려놓고, 모든 배우들을 만나 1대 1로 대본 연습을 같이 하고 그랬어요. 그런 모습을 보며 제가 감동받았어요. '정말 승희를 잘 해내겠다' 하는 믿음도 있었고요. 저희는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가 됐어요. 서로 배우자 기도도 해줘요."
▲ 가수와 배우, 열정 가득한 엄정화의 '영광의 시대'
'닥터 차정숙'은 종영했지만, 엄정화는 매주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tvN 예능 '댄스가수 유랑단'을 통해, 이번에는 가수로서 김완선, 이효리, 보아, 화사와 함께 전국을 누비며 공연을 펼친다. '배반의 장미', '포이즌', '몰라', '페스티벌', 'DISCO'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한국의 마돈나'라 불린 엄정화가 2023년인 지금 선보이는 무대는 기성세대에는 추억을, MZ세대에는 신선한 재미를 안기고 있다.
"드라마 촬영은 지난해 12월에 끝났는데, 시기가 묘하게 겹쳐서 '닥터 차정숙' 방송이 끝날 시점에 '댄스가수 유랑단'이 오버랩 됐어요. 시청자분들은 동 시기의 차정숙과 엄정화를 보게 됐는데, 이것도 재밌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제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가수 무대로, 왔다 갔다 하면서 보여드리곤 했는데, 지금 그때 그 모습을 재현하는 거 같아요. 어느 순간, 제가 앨범 활동을 예전처럼 하지 않게 되면서 멈춰 있었죠. 이렇게 배우와 가수 활동을 동 시기에 보여드리는 건 아주 오랫동안 못 했는데, 다시 이런 시기가 왔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어요."
데뷔한 지 30년, 가수로서도 배우로서도 모두 정점을 찍었던 엄정화에게 자신의 '영광의 시대'가 언제인 것 같냐고 묻자 바로 '지금'을 꼽았다.
"지금인 거 같아요. 제가 했던 그동안의 모든 시간들을 합쳐서, 많은 분들이 예전을 회상하시면서 절 응원해 주세요. 이런 시간이 이렇게 다시 올 줄 몰랐는데, 그게 저한테 엄청난 응원이 되고, 그동안 해왔던 시간에 대한 축하도 같이 받는 거 같아요. 전 뭔가 잘 돼서 남들이 축하를 해줘도 그게 좋다는 걸 못 느꼈어요. 근데 지금은 많은 분들이 보내주는 축하가, 그동안의 모든 걸 합쳐서 보내주는 느낌이라. 그래서 제 영광의 시대는 지금이라 생각해요."
엄정화가 3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연기와 노래를 병행할 수 있는 건, 이 일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 앞에서 나이는 절대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여전히 열정적인 엄정화다.
"제가 무대에 올라가는 걸 너무 좋아해요. 정말 나이 때문에, 어떤 제약 때문에 좋아하는 걸 안 하고 싶진 않아요. 그건 말이 안 되죠. 이게 너무 좋고 계속할 마음이 있다면,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참는 건 아닌 거 같아요. 계속 배우와 가수를 병행할 수 있었던 건, 이걸 너무 사랑하고 좋아하는 제 마음이 원동력이 된 거 같아요."
이미 잘 알려졌다시피, 엄정화가 가수 활동을 멈췄던 이유는 갑상샘암 수술을 받고 성대 신경이 마비되며 소리를 내는 것이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이를 극복한 엄정화는 프로젝트 그룹 '환불원정대' 활동에 이어 '댄스가수 유랑단'까지 하고 있다. 그녀는 후배 이효리가 있었기에, 자신이 용기 낼 수 있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효리한테는 제가 고마운 게 너무 많아요. 효리가 멋지게 있어 왔고 선배를 끌어준 시간이 있기 때문에, 제가 이런저런 시도를 할 수 있었어요. 효리와 환불원정대를 하면서 자신감을 많이 찾았어요. 목소리에 대한 위축이 있었고, 제가 그들에게 방해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효리 덕분에 제가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 있었어요. 모든 건 효리 덕분이에요."
'가수' 엄정화는 재작년부터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그간 드라마 촬영도 있었고, 차근차근 준비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지만, 올해나 내년에는 새 앨범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엄정화는 "무대에 올라가고 싶다는 열정이 있는 한, 계속할 수 있을 거 같다"며 꾸준한 가수 활동을 예고했다.
'배우' 엄정화는 "좋은 배우, 무서운 배우"가 되는 게 목표다.
"오래오래,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작품 안에서 연기를 잘 해내는 배우가 좋은 배우인 거 같아요. 그리고 무서운 배우가 되고 싶어요. 캐릭터가 무섭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인상적인 연기를 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고 싶어요. 그게 배우로서 꿈이에요."
[사진=JTBC, 사람엔터테인먼트 제공]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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