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4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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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인터뷰] 현진영 “죽어서 기억되기 싫어요, 지금 잘되고 싶어요”

강경윤 기자 작성 2018.09.27 09:17 수정 2018.09.27 09:31 조회 7,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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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영

[SBS연예뉴스 | 강경윤 기자] 가수 현진영(47·허현석)을 부르는 여러 수식어가 있다. '힙합 문익점', '시대를 앞선 천재', '동네 바보 형'까지. 현진영은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게 '동네 바보 형'이란다. “음악도 어려운데, 별명이 거창하면 그렇잖아요.”라고 현진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현진영의 음악은 한 편의 영화를 닮았다. 재즈 음악가인 아버지의 끼를 그대로 빼닮은 현진영은 주한미군 부대 근처에서 질풍노도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음악을 소재로 한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의 얘기처럼 현진영에게는 음악이 유일한 친구였고 즐거움이었다. 

현진영과 와와로 데뷔한 그는 국내 가요계에 힙합을 가장 먼저 들고나와 파란을 일으켰고, '흐린 기억 속의 그대'로 가요계를 뒤집어 놨다. 이후 삶의 부침은 이어졌지만 그는 재즈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2006년 '소리쳐봐', 2016년 '무념무상', '내맘대로' 등을 발표하며 독보적인 길을 걷고 있다.

오죽했으면 친구인 봉만대 영화감독이 “사후 인생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제안했을까. 현진영의 음악 인생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행보는 가볍고 유쾌하다. 최근 현진영은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에서 현진영 데이를 진행하며 촐랑대는 매력을 보여준다. 또 그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 팬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현진영의 독특한 철학이 숨어있다. '음악적 고민은 가수가 할 테니, 리스너들은 즐겁게 소비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Q. 다소 뜬금없지만 현진영이 본명이 아니다.

“이수만 선생님이 '허'가 발음이 센다고 해서 '현'이란 성을 붙여주셨다. '현재 진행'이라는 뜻이다. 이름 덕이 큰 것 같다. 방송정지도 9~10년 정도 됐었는데, 어쨌든 28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고도 계속 음악을 하고 있으니.”

Q. 요즘 팟캐스트에서 활약이 대단하다. 얼마 전 콘서트도 성황이었다고.

“의외로 많이 듣더라. 얼마 전 공연을 했는데, 총괄 팀장님이 대기실에 오셔서 '매불쇼 팬'이라고 하더라. 신곡을 내고, 음악 프로그램 활동을 하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신인 가수 혹은 개그맨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현진영

Q. 현진영의 숨은 매력을 발굴한 게 정영진과 최욱은 현진영에게 어떤 존재들인가.

“재밌는 동생들이다. 처음에 섭외가 왔을 때는 안 나가려고 했는데, 거절할 수 없는 분 통해서 연락이 와서 방송에 나가봤다. 재밌더라. 최욱은 과거에 나를 행사장에서 만나서 맞을 뻔했다는데 솔직히 기억은 안 난다. 아마 깐족거리다가 맞을 뻔했을 거다. 재밌는 동생들이다. 내 인생관이 그렇다. 재밌어야 한다. 돈이고 뭐고 재미없으면 안 한다.”

Q. 깜짝 놀랄 만큼 솔직하게 방송하더라. 완전히 내려놓았다.

“그렇다. 방송을 28년 정도 했으니까, MSG(과장)를 치거나 포장하는 것도 있을 거다. 팟캐스트에서는 그렇게 안 한다. 오히려 솔직해야 좋아하시더라. 얼마 전에 구준엽 편에서 이탁 얘기가 나와서 '이탁 나이를 재판 때 처음 알았다'고 했다. 청취자들은 그런 얘길 좋아하시더라.”

Q. 댓글도 굉장히 많더라. 부정적인 의견들은 신경 쓰는 스타일인가.

“댓글에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댓글도 하나의 놀이문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 욕을 하거나, 없는 사실을 가지고 모함하면 나도 댓글을 단다. '현진영인데, 저 아세요?'라고 단다.”

Q. 강아지 공장(뜬장)에 방치된 개들도 구조하고, 여러 좋은 일도 하더라.

“눈에 보이면 지나치지 못하는 거지, 나서서 착한 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반려견을 데리고 애견 운동장에 갔다가 우연히 그런 장면(강아지 공장)을 목격하고 너무 안타까워서 10마리를 구조했고, 그중 5마리가 입양이 안 돼서 그 강아지들은 평생 내가 키우기로 했다. 그래서 총 강아지가 6마리다.”

Q. 한때 가요계 이단아 같았지만, 요즘은 바른생활 사나이처럼 보인다.

“정신 차릴 나이가 되지 않았나. 그래도 철은 아직 안 들었다. 사법적인 사고는 안 치지만 남들과 비슷하게 산다. 다 와이프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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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재즈힙합 장르를 한 지 10년이 넘었다.

“힙합을 가지고 나왔을 때, 1~2년 이후 힙합 시장이 확 커졌다. 재즈힙합을 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그 판이 커지지 않았다. 일부 래퍼들이 재즈힙합을 한다고 하지만, 그건 재즈힙합이 아닌, 랩인재즈다.”

Q. 음악 얘기가 나오면 눈빛이 반짝인다. 재즈힙합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재즈는 스캣과 연주가 위주인 장르다. 재즈힙합을 하기 위해서는 오리지널 스탠다드 재즈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힙합은 장르의 이름이 아닌 비트의 이름이다. 정통 재즈에 힙합 비트로 새로운 재즈를 만들어야 완성이 된다.”

Q. 재즈의 현진영화라고 보면 되겠나.

“내가 하면서 현진영 화가 됐다. 국내 최대 음원사이트조차 아직 재즈의 개념을 잘 모른다. 색소폰이 들어가면 재즈라고 하고, 없으면 재즈가 아니라고 한다. '내맘대로'는 색소폰이 없다고 어반힙합으로 분류됐다. '무념무상'은 아예 힙합으로 들어갔다. 최대 음원 사이트조차 그런 게 현실이다.”

Q. 재즈 하면 대중에게는 어렵다고 느껴지긴 한다. 힙합과 재즈 모두 '정신'이라는 말이 붙을 수 있다. 재즈 정신은 뭐라고 생각하나.

“재즈 정신은 자유와 삶이다. 삶을 고단하게 사는 사람의 재즈는 고단함이다. 재즈에는 희로애락이 있다. 재즈에 블랭크맨쉽이라는 게 말이 있는데, 절벽 끝에서 벌떡 일어나는 정신이라는 뜻이다. 어떤 역경이 오더라도. 힘들고 고단한 장르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더 열악하다. 수요가 적다.”

Q. '힙합 문익점' 현진영은 왜 재즈로 돌아갔나.

“힙합을 하다 보니까 이게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했다. 힙합의 뿌리가 재즈다. 장르를 바꿨다고 하기보다는 업그레이드했다는 게 맞다. 혹은 초심으로 돌아갔다고 봐주면 좋을 것 같다.”

Q. 기인에 가까울 정도로 한 장르를 팠다고.

“1993년 마음을 먹고, 2002년 '소리쳐봐'를 만들 때까지 계속 파고들었다. 미국을 직접 가고 싶었지만 입국이 안돼서 못 갔다.(웃음) 미국 음대 교수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음악적 궁금증을 해소했다. R&B를 배우기 위해서 평택 오산에 있는 흑인들이 다니는 교회에서 성가대 생활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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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집요하리만큼 노력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아버지와 이수만 선생님에게 귀가 닳도록 들은 얘기가 있다. 음악에는 역사와 민족성, 문화가 담겨 있다.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그들의 소울을 흉내라도 낼 수 있고, 결국 흉내를 넘어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거다. 물론, 똑같이는 할 수 없겠지만. 사실 나의 이런 모습은 아버지를 닮은 거다.”

Q. 재즈 음악가였던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

“아버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기인이었다. 아버지는 우리나라 최초로 재즈밴드를 만들어서 연주 활동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선산까지 팔아가면서 밴드 연주자들에게 월급을 줬던 분이다.”

Q. 현진영의 모습이 아버지에게서부터 왔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은 이런 기억도 있다. 힘 있는 정치인이 아버지에게 행사 반주를 해달라고 했는데, 아버지가 안 간다고 버텼다. 그쪽에서 보낸 직원들이 악기를 만지니까 항의를 한다며 아버지가 비싼 악기들을 망치로 다 때려 부수기도 했다. 아버지는 위문 공연을 앞두고 군인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며 집 밖에서 잠을 잤고, 5~6시간씩 걸어 다니기도 했다. 내가 '무념무상'을 만들 때, 노숙을 했는데, 그것도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Q. 그런 아버지가 아들이 재즈 음악을 하는 것에는 반대했었다고.

“아버지는 늘 음악을 위해서 절벽 끝에 있던 사람이었다. 내가 재즈를 파고들어서 '소리쳐봐'를 녹음하려고 할 때 아버지는 들을 때마다 '네가 무슨 재즈냐', '겉멋이 들었다', 심지어 '쓰레기'라고까지 했다. 목소리가 얇다기에 아예 살을 찌우고 나타났더니 '네가 가수지, 스모선수냐?'고 했다. 40번 이상 녹음을 하며 앨범 4장을 만들 돈을 쏟아부었다. 결국 아버지는 앨범을 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바로 전날에도 아버지와 전화로 대판 다퉜다.”

Q. 이렇게 재즈의 길을 걷는 아들을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소리쳐봐'를 내고 10년이 흐른 지금은 알겠다. 왜 아버지가 하지 말라고 했었는지를. 아버지는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파고드는 모습을 예쁘게 보긴 했을 거다. 하지만 내가 삶과 인생을 음악에 담아낼 정도로 무르익지 않아서, 아버지는 그런 마음에 내가 재즈를 하지 않기를 바랐을 거다.”

Q. 2016년 9년 만에 낸 재즈곡 '무념무상'은 대중 가요계에 한 획을 그었다.

“녹음할 때 스캣을 살벌하게 했다. '나 안 죽었어. 살아있어'라는 걸 어필하고 싶었다. 그간 나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고, 노숙자들과 함께 노숙을 하면서 모든 걸 경험해보려고 했다. 이제야 '아, 아버지가 원하던 게 이런 거였구나'라고 느끼고 있다. 재즈는 끝까지 외로운 거 같다. '무념무상'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사람이 안됐을 거고, 뮤지션으로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을 거다. 아버지가 나에게 선물한 건 '물음표' 그 자체였다.”

Q.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천재라고 불러주시면 과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타고난 스타일은 맞다. 아버지에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렇다고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춤도 음악도 재즈도 머리로는 설명하지 못해도, 몸으로 그대로 느끼고 하는 건 있다. 돈 관리, 대인관계, 사회생활에서는 미숙한 게 많으나, 음악적으로는 감사하게도 타고났다. 그래서 신은 공평한 것 같다.”

Q. 현진영 씨가 이 자리에 있게끔 옆에서 아내 분이 정말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딱 우리 아내 같은 분이었다. 아내는 나를 강가에 내놓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딜 가든,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을 나오고, 내가 들어올 때까지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사고 치지 마라'는 말을 항상 하는 게 서운할 때도 있지만 아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Q. 실력도 인기도 대단했지만 인생에 부침은 여럿 있었다.

“나의 실수로 하지 않아도 될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16살 때 연습생으로 들어가서 18~19세 때 데뷔했으니 음악을 제외하고, 남들이 배우는 기본적인 것들을 놓쳤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이유도 있다. 2002년 4집 앨범 발표 날 내 발로 병원에 입원을 해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우울증과 조울증, 공황장애 등과 함께 인성인격 장애 판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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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성인격 장애란 뭔가.

“12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몸은 성장했지만 판단력이나 조절능력은 나이에 맞지 않았다. 어른처럼 성숙하게 대응을 해야 하는데, 예전에는 그런 게 잘 안됐다. 아내가 아이 가르쳐주듯 다 설명해줘서 계속 노력하는 중이다. 가끔 방송을 하다가 내가 대답이 늦을 때가 있다. 그건 '이게 맞는 건가'라는 걸 속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이다.”

Q. 현진영 씨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공중파 라디오 같은 걸 하면 땀을 엄청 흘린다. '지금 뱉는 말이 맞는 건가'를 생각하니 대답이 느리게 나오고, 가끔 오해를 부르기도 한다. 최근 하는 '매불쇼'는 그런 게 없다. 말실수는 몇 번 했지만 솔직하게 하고 있다.”

Q. 아버지가 재능을 줬다면, 아내 분은 현진영을 빛나게 해주는 존재인 것 같다. 

“아내는 온전하게 음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앨범 준비를 하다 보면 생활비가 쪼들릴 수도 있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아내는 내 인생에서 큰 의리를 지켜준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아내에게 의리를 지키고 싶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제 내가 사고 안 친 지 20년이니, 이제는 남편을 좀 믿어주고 내 편을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Q. 현진영이 앞으로의 음악 생활을 어떻게 하고 싶나. 

“실력 있는 재즈 뮤지션들이 대중의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다.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재즈 무대를 소개하고 싶다. 얼마 전 콘서트도 그런 의미였다. 콘서트는 계속 할 거다. 팟캐스트를 통해서 가요계 한 획을 그었지만 대중의 관심에서 살짝 멀어진 아티스트들과 음악도 소개하고 싶다.

Q. 충분히 레전드로 평가받을 만하다. 봉만대 감독 얘기처럼 사후에 영화가 나오는 거 아니냐.

“죽어서는 기억되기 싫다. 살아 있을 때 많이 사랑받고 싶다. 배고픈 뮤지션들이 좋은 음악을 만드는 건 옛날얘기다. 마이클 잭슨은 자기 맨션에서 노래 만들고 뮤직비디오 다 찍었는데도 희대의 노래를 만들지 않았나. 실수를 해서 몇 번씩이나 내 복을 차버렸지만, 기회를 준다면 열심히 하겠다. 죽은 뒤에 작품이나 음악이 재평가받을 수 있지만 재평가 안 해줘도 되니까(웃음) 살아 있을 때 음악 다운로드 좀 많이 해주고 들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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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 인터뷰>는 음악, 영화, 드라마 등으로 대중문화계 한 획을 그은 이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는 SBS연예뉴스만의 인터뷰 연재 코너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숨은 레전드를 찾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ky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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