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6일(일)

스타 끝장 인터뷰

[인터뷰] 천우희라는 보석…'한공주'라는 기적

김지혜 기자 작성 2014.04.28 15:10 조회 9,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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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눈동자가 카메라를 품은 것 같다. 투명한 눈망울은 보이는 그대로를 담아내려는 듯 인물이 직면한 상황과 감정을 드러낸다. 관객은 그 눈을 통해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공주의 마음을 읽는다. 이것은 인물을 연기하려 들지 않고, 이해하려 한 천우희의 현명한 판단이 빚어낸 결과다.

열여덟 여고생의 이름은 한공주. 그러나 이름처럼 곱게 살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세상이다.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언제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상처를 받았다 해도 떳떳하게 소리칠 수도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처지가 바뀐 이상한 세상, 공주가 머문 곳은 지금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 '한공주'(감독 이수진)가 작지만 뜨거운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독립영화의 한계를 딛고 개봉 11일 동안 전국 14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상업영화와 비교한다면 큰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풍요롭지 못한 상영 여건과 다소 어두운 소재를 생각하면 의미 있는 관객의 호응이다.

한공주

이 기적을 진두지휘한 이가 이수진 감독이라면, 천우희는 그 기적 같은 영화 안에서 보석과 같은 재능을 발휘했다. '한공주'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라도 천우희의 얼굴을, 이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이 역할은 내 것이다 싶었어요"

천우희는 2004년 영화 '신부수업'으로 데뷔, 올해로 연기를 시작한 지 10년째가 됐다. 이제야 찾아온 '한공주'는 어쩌면 배우에게 흔치 않은 운명의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집단 성폭행을 당한 여고생, 그 상처받은 내면을 연기하기란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천우희는 "굉장히 현실감이 있게 그리고 싶었다. 인물의 내면도 그렇고 외면도 그 인물이 돼 생각했다. 말투, 표정, 걸음걸이까지 어떤 마음일지 어떻게 행동할지...아무것도 안하는 것처럼 뒷 모습만 보이더라도 마음속에 서브 텍스트를 가지고 있으려고 했다. 그래야 인물이 표현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관련 사건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건 중요한 게 아니구나' 싶더라. 사례를 찾아보고 분노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당사자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표현하는 게 중요하단걸 깨달았다. 시나리오 하나만 보고 공주를 어떻게 표현할까 싶었다. 또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굉장히 불편할 수도 있고, 반대로 깊이 공감할 수도 있는 그 한 끗의 차이가 크다는 생각도 했다. 당사자의 아픔에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깊이있게 이야기 해보고 싶었다"

천우희는 비슷한 소재의 영화에서 불편한 사건만 강조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했다. 반드시 이야기 해야할 것도 있지만, 자극적인 묘사나 연기는 원치 않았다고 했다. 때문에 촬영하면서 이수진 감독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꼭 짚어야 할 부분과 제대로 표현해야 할 감정들에 대한 숙제가 적잖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히 공주를 연기할 천우희의 몫이기도 했다. 천우희는 현명하게 또 사려깊게 인물에게 다가갔고, 종잇장같은 10대 소녀의 민감한 감성을 사실적으로 스크린에 옮겼다.

천우희

영화 속 공주는 끔찍한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비록 세상이 아프게 하더라도 본인은 다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본인이 피해자라는 건 무의식에 깔렸었을 테지만, 의식적으로는 그걸 지우려고 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촬영을 할 때는 공주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연기했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라는 대사도 꾸밈없이 '이게 뭐지?', '나한테 왜 이러지?'와 같은 느낌으로 연기했다. 화를 내거나 분노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이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 장면의 여운도 상당하다. 보는 이에 따라서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으로 의견이 나누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천우희는 해피엔딩이라 여긴다고 했다.

"새드엔딩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다. 공주의 나레이션과 공주를 부르는 친구들의 소리 등...난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괜찮아. 힘내"라는 위로보다 공주의 이름을 힘차게 외쳐주는 친구들의 모습이 더 따뜻하게 다가왔다"

천우희

'한공주'를 만난 천우희는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석 자를 관객에게 아로새겼다. 배우 10년 차,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목표는 매순간 바뀐다. 하지만 '좋은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동안 너무 센 캐릭터만 연기해온 것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난 더 센 것도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다"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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