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부부 생활은 길고 긴 대화와 같은 것이라 했다. 서로 다른 인격의 사람이 애정을 기반으로 결혼해 갈등과 화해를 반복하며 융화에 이르는 과정, 이 과정에서 대화를 통한 소통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물론 이 대화의 범주에는 언어의 대화는 물론 육체의 대화까지 포함돼 있다.
영화 '윗집 사람들'은 두 부부의 대비를 통해 인간관계와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건네는 코미디 영화다. 공동 주거인 아파트가 보편화된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이어지는 '층간 소음'과 부부 사이의 오랜 화두인 '섹스'를 소재로 한 대담하고 발칙한 수다를 떤다.
미술 강사인 정아(공효진)는 영화감독인 현수(김동욱)와 부부 사이다. 열정적인 연애 끝에 결혼했으나 언젠가부터 섹스도 줄고 대화까지 줄어 무미건조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부부에게 생활의 침묵을 깨는 건 서로를 향한 대화가 아닌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이다. 정아와 현수는 신음을 동반한 이 소음이 윗집 부부의 잠자리에서 발생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윗집 사람들의 요란한 열정이 정아는 못내 부럽고, 현수는 마냥 불쾌하기만 하다.
어느 날 정아는 문제의 윗집 부부인 김 선생(하정우)과 수경(이하늬)을 집으로 초대하고 이들에게 강한 반감을 품은 현수는 식사 내내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다. 김 선생과 수경은 시종일관 특별한 금실을 자랑하며 정아와 현수 부부를 자극하더니 예상치 못한 파격 제안까지 한다.
'윗집 사람들'은 네 명의 캐릭터가 식탁에 마주 앉아 끊임없이 대사를 주고받는 구성을 띈 작품이다. 집이라는 공간이 영화의 주요 무대이며 배우들의 동선이라고는 주방과 안방, 서재 정도다. 연극적 구성을 내세우는 작품에선 배우의 역량이 중요하다. 사실상 배우 간 앙상블이 관객의 감정을 유발하는 유일한 동인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영화 '센티멘탈'(2020)과 비교하면 진일보한 리메이크다. 원작은 소재가 참신하고, 질문이 도발적인 데 비해 심심한 유머와 교훈적인 메시지를 강조해 캠페인 성격이 짙은 영화라는 인상을 남겼다. 연출은 물론 각본까지 집필한 하정우는 영화의 색깔은 유지하되 한국적 유머와 정서를 가미해 같은 이야기인데 완전히 다른 영화를 만들어냈다. 티키타카의 매력을 살린 각본, 챕터 구성으로 흐름을 전환한 선택, 달파란의 영화 음악도 영화의 세련미를 돋보이게 한다.
'윗집 사람들'은 시추에이션 코미디로 노선을 정하고, 개성 강한 배우들을 내세워 쉴 틈 없는 개그를 시도한다. 하정우와 이하늬는 19금 대사를 자신의 캐릭터와 연기 스타일에 맞게 저글링 하다가 상대편으로 넘기고, 이를 받은 공효진과 김동욱은 상반된 리액션으로 응수한다.
소재와 연출 특성상 배우들만 상황에 심취하고 정작 보는 사람은 민망한, 실패한 코미디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금기에 가까운 직설, 점잔을 가장한 위선으로 대비되는 두 부부의 속사정을 드러내며 공감가능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몇몇 문어체 대사가 대화의 흐름을 어색하게 만드는 구간도 분명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터질 때까지 시도하는 듯한 19금 개그가 무리수로 여겨질 때도 있다.
그 실험정신의 수위는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로 조정된다. 기본기가 탄탄한 김동욱은 시트콤과 정극 사이를 오가며 극의 무게 중심을 잡는다. 공효진은 특유의 활력 넘치는 생활 연기로 현실 부부의 리얼리티를 살려냈다.
하정우와 이하늬는 기능적 성격이 강한 캐릭터로 설정돼 있고 연출 목적에 충실한 연기를 해냈다. 두 사람은 아랫집 부부의 무미건조한 결혼생활에 파동을 일으키는 촉매제다. 두 배우는 개인기로 웃기는 상황을 세팅하고, 대사의 묘를 극대화하며 유머의 중심축을 이룬다.
'윗집 사람들'은 '부부의 성생활'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떠들어대는 발칙한 영화다. 관객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 불쾌한 19금 섹드립이 될 수도 있고, 도발적인 '섹스 담론'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극단의 반응이 나올 수 있는 영화지만, '윗집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관계와 소통의 중요성이다. 성(性)관계라는 것이 상호 교감하에 이뤄지듯 소통도 상대와 내가 언어와 감정을 주고받는 과정이다.
"당신의 부부 생활은 안녕하십니까"라고 영화가 건네는 질문에 "별 시답잖은 질문을 다 듣네"라고 반응하다가도 극장을 나올 때 "나는, 우리는, 어떤가'라고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된다면 이 영화는 성공한 농담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소재를 생각하면 노출의 수위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배우들의 살갗 노출은 전혀 없으며 스킨십 수위도 논할 게 없다. 그런데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건 말의 수위 때문이다. 상업영화 대사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19금 단어들이 예기치 않게 '훅' 치고 들어온다. 대사의 수위를 조절해 15세 관람가 등급을 노렸어도 됐을 것이다. 그러나 직진한 제작진의 패기가 '야한데 야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윗집 사람들'은 생각은 내려놓고, 마음은 열고 봐야 하는 영화다. 소재나 캐릭터에 대한 선입견 없이 마음을 열고 상황 그 자체를 즐기다 보면 꽤 이색적인 블랙 코미디 한 편을 만날 수 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