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5일(화)

영화 스크린 현장

[스브수다] "연기는 숙제 검사가 아니야"…'올해의 신인' 서수빈을 일깨운 말

작성 2025.11.25 11:37 조회 307

서수빈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필모그래피가 백지인 신인을 만나는 것은 늘 설레는 일이다. 그 발견의 기쁨이 빛나는 재능으로 뭉친 배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2025년 영화계를 결산할 때 배우 부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신성이 있다. '세계의 주인'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서수빈이다.

2001년생인 서수빈은 '세계의 주인' 전까지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도 출연한 적 없는 '생짜 신인'이다. 1년 남짓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이는 짧은 일탈이었다. 윤가은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우리집'(2019)을 관람한 이후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배우 데뷔는 운명과 같았다. 자신에게 배우를 꿈꾸게 했던 감독의 신작 오디션 기회가 찾아온 것. 서수빈은 세 차례의 오디션 끝에 주인공 역할을 따냈고, 치열한 과정 끝에 '이주인'으로 거듭났다.

때에 맞는 연기라는 게 있다. 배역의 나이가 배우의 나이를 앞지르거나 뒤처져 연기로 노력해야 하는 캐릭터가 있는가 하면 나이대가 맞아 캐릭터에 자연스레 이입이 되는 연기가 있다. 서수빈은 후자다. 주인의 나이로부터 머지않은 과거에 고교 시절을 보냈고, 그 시절의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어 체화가 가능했다.

서수빈은 이주인 그 자체였다. 윤가은 감독이 경력이 다양한 배우들 속에서도 서수빈이라는 신인을 선택한 이유였다.

세계

◆ "윤가은 감독님의 영화를 보며 배우를 꿈꿨어요"

서수빈은 '윤가은 키즈'다. 윤가은의 영화를 보고 영화의 힘과 매력을 알았고, 배우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어려서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어요. 표현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연기도 배우게 됐고, 연극영화과 입시까지 준비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땐 연기나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에 빠지기 전 단계였어요. 고향이 울산인데 친구와 함께 부산 영화의 전당에 영화를 보러 갔어요. 그때 본 작품이 윤가은 감독님의 '우리집'이었어요. 감동에 눈물을 흘렸죠. 2019년 9월 1일, 날짜까지 기억해요. 그때 '저런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라는 꿈을 처음으로 품게 된 것 같아요"

서수빈은 소속사를 통해서 '세계의 주인' 오디션 제의를 받았다. 총 세 차례의 감독 미팅과 연기 워크숍을 통해 합격할 수 있었다. 서수빈은 "감독님이 사무실로 불렀는데 두꺼운 종이봉투를 건네셨어요. 표지에 '세계의 주인'이라 쓰여있는 시나리오였어요. '연출 윤가은'이라는 글자가 잊히질 않았어요. 그땐 역할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였는데 감독님이 강아지 역할, 불상 역할도 괜찮냐고 하시더라고요. 전 어떤 역할도 괜찮다고 했어요"라고 당시의 환희를 떠올렸다.

세계

오디션 합격은 인생에 다시없을 축복이었지만, 남은 숙제가 산 넘어 산이었다. 주인은 밝고 건강한 19세 소녀지만, 내면의 아픔과 상처를 간직한 인물이었다. 세상의 시선과도 싸우는 고난까지 연기해내야 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는 자의식이 올라왔어요. 그러다가 중간부터는 이야기로 빨려 들어갔죠. 주인이는 아픈데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저를 돌아보기도 했어요. 내가 가졌던 고정관념은 무엇이었을까. 제 개인에게도 너무나 크게 다가온 작품이에요. 주인이 뿐만 아니라 인물 하나하나에 다 이입이 됐어요. 그때 들었던 감정을 추스르는데 꽤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한 번에 쭉 읽고 생각을 말해달라고 하셨는데, 다 읽고 나서는 멍해져서 피드백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여러 번 문자를 썼다 지웠다 하다가 눈물 셀카 사진을 보내드렸어요. 그 어떤 말보다 명확한 제 감상이었죠"

세계

◆ "살을 빼야 한다고 생각…감독님은 '무슨 말이냐'고"

윤가은 감독은 총 세 차례의 미팅에서 서수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연기에 대한 재능을 보는 건 부수적인 일이었다. 서수빈은 이주인과 닮았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어린 시절 태권도를 배웠다. 무엇보다 건강하고 밝다. 또한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솔직함이 있었다. 대체할 수 없는 캐스팅이었다.

영화를 준비하는 기간만 두 달이었다. 캐릭터 분석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았다. 영화에서 가장 많은 연기 호흡을 맞추게 될 장혜진 배우와도 사적인 만남을 가지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반 친구로 등장하는 또래의 배우들과도 가깝게 지내며 앙상블을 완성해 갔다.

서수빈

에피소드도 있었다. 다이어트에 관한 것이었다. 서수빈은 "아이돌 연습생 때부터 살을 빼야 한다는 말만 듣고 살아서 촬영을 하면 당연히 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도 그걸 원하실 것 같아서 살을 최대한 빨리 빼겠다고 했어요.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이냐고? 절대 빼지 말라'고 하셨어요"라고 전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주인이는 어떤 사람일까?'를 계속 생각했어요. 감독님은 (연기는) 숙제 검사가 아니라고 하셨어요.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평소 지하철을 탈 때나 알바를 갈 때도 늘 주인이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어떻게 연기할지를 생각했어요"

윤가은 감독의 연기 지도 방식에 대해 물었다. 서수빈은 "일단은 먼저 연기를 해보라고 하세요. 단, 배우가 연기를 하기 전에 신의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세요. 제가 그 상황에 들어갈 수 있게끔요. 그래서 촬영 현장에서도 상황에 몰입하기가 수월했던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세계

◆ 세차장 신의 비하인드…"실제 상황이었다"

시종일관 주인의 일상이 담담하게 펼쳐지던 영화에서 주인의 내면이 표출되는 장면이 단 한 번 등장한다. 내재돼 있던 주인의 분노와 억울함, 상처가 폭발한 '세차장 신'이다. 그전까지 서수빈의 연기가 연기인 듯 연기 아닌 자연스러움을 내세웠다면 이 장면에서는 극적인 감정 표출이 극대화됐다.

서수빈은 이 장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촬영 전부터 극도로 긴장했다고 밝혔다.

"앞에 촬영이 끝나고도 세차장신 때문에 마음이 편하질 않았어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죠. 그런데 이 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감독님이 리허설을 안 하시는 거예요? 감정이 가장 큰 장면이기 때문에 제 연기를 보셔야 할 것 같은데... 따로 말씀이 없으셔서 불안하기도 했어요. 혼자 연습실에 가서 소리 지르며 연습을 많이 했어요. 감정을 조성하기 위해 별의별 노래도 다 들었고요. 촬영 당일, 현장에 가니까 긴장이 되더라고요. 여러 테이크를 통해 감정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거쳤어요. 감독님이 리허설은 따로 안 하셨지만 촬영 전날 카톡을 이만큼 보냈어요. '우리가 내일은 주인이의 내면으로 들어가 보자. 너 혼자가 아니고 나도 있고 '세계의 주인'의 스태프들도 있으니 편안하게 연기해'라는 내용이었어요. 그게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이 장면이 찍힌 공간은 실제로 영업을 하고 있는 세차장이었고, 영화에 등장한 세차장 직원도 실제 직원이었다. 이 직원이 카메라 앵글에 잡히는 줄 모르고 영화 촬영 장면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그 모습이 연기를 하고 있던 서수빈의 눈에도 포착됐다. 순간 집중력이 틀어졌다고 했다. 윤가은 감독은 그런 서수빈에게 '눈감고, 천천히 호흡해 보자. 천천히 들어가면 되니까. 너가 필요한 만큼 시간을 가지렴'이라고 말하며 마인드 컨트롤에 도움을 줬다. 그렇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아마도 감독님께서는 지금 여기, 차 안에서 주인이의 내면을 만나게 해 주시려고 리허설을 안 한 것 같았어요. 감독의 생각은 옳았어요. 집중력이 흐트러진 순간도 분명 있었는데 감독님 덕분에 집중하는 방법도 알게 된 것 같아요"

세계

◆ 한국 영화는 위기인가…12만의 기적으로 본 '희망'

영화 '세계의 주인'이 의미 있는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10월 22일 358개의 스크린에서 상영을 시작한 영화는 24일 만에 10만, 33일 만에 12만 관객을 돌파해 2025년 개봉한 한국 독립예술극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다. 팬덤 '주인장'(주인공 '주인'의 이름에서 착안해 팬들이 직접 만든 애칭)의 호평과 반복 관람의 힘은 물론이고 '올해의 영화'라는 평단, 언론, 영화인들의 극찬은 좋은 영화를 기다려온 관객들의 발걸음을 극장으로 향하게 했다.

서수빈은 "주인이 뿐만 아니라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 영화잖아요. 관객마다 감정을 이입하는 인물도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모든 인물들에 다 공감이 갔거든요. 게다가 저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모두 다 봤잖아요. 제가 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감독님, 스태프, 배우들이 이 영화를 만들어주셨어요"라고 영화 촬영 과정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지금의 호평을 행복하게 받아들였다.

서수빈

이제 막 첫 발을 뗀 서수빈은 배우로서 어떤 꿈과 목표를 가지고 있을까.

"좋은 말씀을 많이 듣다 보니 두렵기도 해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히긴 하는데, 주인이 그랬던 것처럼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에요. 감독님께서 '과거나, 미래로 가지 말고 지금만 생각해'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그 말씀대로 현재에 집중하면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연기해나가고 싶어요"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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