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31일(금)

방송 프로그램 리뷰

[스브스夜] '꼬꼬무' 박승일, "내가 시작해 놓으면 누군가 반드시 이룰 거야"···삶 자체만으로 세상에 전한 '선한 영향력'

작성 2025.10.31 07:09 조회 442

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내가 시작해 놓으면 누군가 반드시 이룰 거야"

30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거인의 마지막 계획'이라는 부제로 박승일 재단의 박승일 대표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박승일은 대학 팀과 실업 팀에서 농구 선수로 생활했지만 늘 주전은 차지할 수 없어 아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농구에 진심이었고 실업 팀 은퇴 후 또 다른 꿈을 꾸었다.

서른을 앞둔 나이에 지도자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승일. 그는 이후 한 실업팀의 부코치 겸 통역으로 임명되었고 국내 프로 농구 최연소 코치에 등극했다.

그런데 그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 급히 귀국해 의사인 둘째 매형을 찾아간 승일. 매형은 그에게 당장 큰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보라고 권유했고, 그는 루게릭병이라는 근육병 진단을 받게 되었다.

2년 안에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진 루게릭병은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 전설의 4번 타자 헨리 루이스 게릭의 이름에서 따온 병이었다. 그는 루게릭병 진단 2년 후 사망했고 이에 그를 기리기 위해 이 희귀병을 루게릭병이라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처음 병이 발병하고 화도 나고 억울하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생각했던 박승일.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기 위해 농구에 열정을 다 했다. 하지만 코치 임명 3개월 후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코치직에서 물러났다.

완치 불가의 병이라 정부 지원이 전무한 루게릭병은 가족까지 물고 들어가는 물귀신 같은 병이었다. 이에 박승일은 환자들의 가족들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며 루게릭병 전문 요양 병원 건립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 마지막 계획으로 직접 병원을 짓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방송 등에 출연해 루게릭 병을 알리고 농구팀 등을 찾으며 후원을 받았다. 하지만 모금액이 늘수록 몸은 더욱 굳어갔다.

그리고 이에 그의 가족들은 그가 이 일을 멈추기를 바랐다. 하지만 박승일은 "누나처럼 하면 바뀌는 것은 없다"라며 "내가 시작해 놓으면 누군가 반드시 이룰 거야"라고 자신의 꿈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이제 가족 없이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가 누군가와 소통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 하지만 그때 안구 마우스가 등장했고 이를 통해 그는 다시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렵 황우석의 세계 최초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발표되고 이는 황우석 심드롬을 만들며 희귀 난치병 환자들과 가족들은 열광했다. 박승일도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몇 달 후 그의 발표가 거짓임이 드러났고 박승일은 크게 절망했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줄어들 무렵 안구 마우스 사용도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이때 박승일의 가족들은 박승일에 관한 특집 기사를 썼던 기자에게 연락을 해 그의 글을 책으로 써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에 기자는 그동안 박승일과 주고받은 글들을 바탕으로 책을 발간했고 이를 읽은 이들은 크게 감동하며 SNS에 인증을 남겼다.

가수 션도 박승일의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고 그는 박승일에게 1억 원의 후원금을 지불하고 루게릭병 요양 병원 건립을 위한 모금 홍보 활동을 시작했다.


후원금과 모금액이 늘어날수록 모금 활동을 위해 재단 설립이 필요한 상황. 그리고 마침내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받아 재단이 만들어지고 박승일과 션이 공동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재단 운영은 박승일의 큰 누나가 맡게 되었다.

이후 루게릭 희망 콘서트 등을 통해 모금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2014년 여름 미국에서 시작된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한국으로 이어졌고 이를 통해 최소 24억 원의 모금액이 모였다.

그렇게 목표액의 70% 가까이 채워지며 경기도 용인에 1000 평의 부지도 마련했다. 그런데 병원 건립이 코앞까지 왔던 그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모금 활동은 위축되었고 사람들은 박승일을 더 이상 만나러 오지 못했던 것.

그리고 그 무렵 늘 어머니와 함께 박승일을 돌보던 그의 아버지가 쓰러졌다. 자신을 돌보던 아버지가 쓰러졌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박승일은 크게 절망했다. 하지만 대장암 말기를 선고받은 그의 아버지는 결국 박승일 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팬데믹 이후 자재비, 인건비가 오르며 모금액만으로 병원을 건립하기는 힘들었던 상황. 그런데 정부에서 비용의 절반을 지원해 주기로 했고 그렇게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 착공식이 열렸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꿈을 위해 달려온 박승일, 하지만 누구보다 지쳐버린 박승일. 그는 이제 해방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그렇게 2025년 3월, 루게릭 전문 요양병원이 개원했다. 이는 23년 만에 박승일의 꿈이 이뤄진 것이었다. 그런데 병원 개원날 박승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개원 6개월 전인 2024년 9월 25일, 하늘의 별이 되었다.

박승일의 큰 누나는 "승일이 구웠던 꿈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들이 그가 떠나고 나서야 그의 가치 있는 삶에 대해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라며 이제는 곁에 없는 동생을 그리워했다.

삶 자체 만으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주었던 박승일. 그리고 그렇게 모인 마음 마음들이 그의 꿈을 이루었다. 그의 말대로 그가 시작한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뤄낸 것. 하지만 이제 겨우 병원 하나가 지어진 것뿐이다. 더 많은 이들이 지원을 받으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과 후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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