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9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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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夜] '꼬꼬무' 강제 키스 단설 사건···"최말자는 무죄다" 61년 만에 되찾은 정의

김효정 에디터 작성 2025.09.19 07:07 조회 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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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SBS연예뉴스 | 김효정 에디터] 최말자는 무죄다

18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에서는 '나는 죄가 없다 - 최말자, 61년 만의 재심'이라는 부제로 강제 키스 단설 사건을 추적했다.

18살이 되던 1964년 5월, 최말자를 찾아온 친구들. 그런데 옆마을에 살던 친구들의 뒤를 옆마을에 사는 스물한 살 노 씨가 뒤쫓았다.

늦은 밤이 되어도 돌아가지 않고 말자의 집 앞에 서성거리던 노 씨. 두려움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 말자는 노 씨를 돌려보내려 나섰다. 그런데 노 씨는 길을 모른다며 가라고 해도 꼼짝도 않았다.

결국 말자는 친구들을 위해 자기가 노 씨를 큰길로 유인할 테니 그 사이에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렇게 말자는 노 씨에게 길을 알려주고 돌아서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몇 발자국도 걸어가지 못하던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노 씨가 뒤에서 말자의 어깨를 잡고 발을 걸어 넘어뜨린 것. 그리고 그는 쓰러진 말자의 몸에 올라타 입을 맞췄다.

강제 추행을 당한 말자는 안간힘을 다 해 저항하며 도망쳤다. 하지만 몇 번이고 노 씨는 말자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추행했다.

순간 돌에 머리를 부딪히며 정신을 잃은 말자.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말자가 눈을 뜨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입 안에 무언가 이상한 게 느껴졌고 이를 뱉어버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던 그때 노 씨가 다시 말자의 집으로 찾아왔다. 어눌한 발음으로 자신의 혀를 찾아달라는 노 씨. 그때 말자는 자신이 노 씨의 혀를 깨물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앞서 말자가 뱉어낸 것이 바로 노 씨의 잘린 혀였던 것. 다음 날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기자들이 몰려오고 충격적인 기사가 났다. 그런데 기사 내용은 사실과 달랐다. 혀가 잘린 남자를 동정하고 옹호하는 기사 내용에서 노 씨의 성추행은 키스로 둔갑했었던 것.

그리고 며칠 후 노 씨가 패거리 열 명을 끌고 말자의 집에 쳐들어와 식칼을 들고 말자를 협박했다. 자신을 불구로 만들었으면 책임 지라며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것.

그리고 며칠 후 후속 기사가 보도됐다. 혀 잘린 것도 인연이니 두 사람을 결혼시키자는 노 씨 집안의 제안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 말자 가족은 단칼에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노 씨 측은 치료비와 위자료로 20만 원을 요구했다. 이는 당시 3년 치 연봉이자 소 14마리 살 수 있는 돈이었던 것.

말자는 당당했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위자료를 지급하냐는 것. 그리고 노 씨를 강간 미수로 고소했다. 그러자 노 씨는 말자를 중상해죄로 맞고소했다.

조사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말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말자의 가족들도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이에 말자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했지만 가족들 덕에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후 경찰은 말자의 행동을 정당방위로 인정했다. 그런데 검찰로 넘어간 사건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검찰은 말자를 구금하고 멸시했다. 폭행까지 하며 말자에게 진술을 강요했다. 특히 검찰은 말자의 의도를 왜곡하며 "너도 마음이 있었던 거 아니냐? 멀쩡한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면 시집을 가든가 돈 주고 합의를 하든가 해야지"라는 등 2차 가해를 했다.

그러나 말자는 끝까지 굽히지 않았고, 이에 검사는 "너 순순히 인정 안 하면 평생 감옥에서 살 줄 알아라"라고 윽박질렀다.

말자는 강간을 당할 뻔했던 순간보다 검사에게 조사를 받던 순간이 더 치욕스럽고 무서웠다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50여 일간의 조사 끝에 검사는 말자를 구속 기소했고 노 씨는 석방되었다. 그리고 1964년 10월 20일 열린 첫 공판에 선 말자와 노 씨.

그런데 말자는 중상해죄, 노 씨는 특수 주거 침입과 특수 협박 혐의로 법정에 섰다. 노 씨에 대한 강간 미수 혐의는 빠져버린 것이다.

이에 정당방위를 주장했던 말자의 입장은 사라지고 중상해 혐의만 남으며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검찰은 말자를 소년법으로 징역 장기 3년 단기 1년를 구형했다. 그리고 노 씨에게는 징역 8개월을 구형했다.

또한 판사는 말자를 향해 "처음부터 노 씨에게 호감이 있던 게 아니냐,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냐"라는 말을 법정에서 했다.

그리고 말자의 변호인조차 노 씨와 결혼하라고 부추겼다. 최종 변론에서 총각 혀 자른 키스 사건으로 노 군이나 최 양이 다른 처녀 총각과 결혼하기는 우리 사회 풍습으로 보아 어려운 일이니 본 변호인이 팔 걷고 나서서 누 군과 최 양의 혼인 중매에 나서겠다고 열변을 토해 만장의 방청객들의 격찬을 받았다는 기록이 공분을 자아냈다. 재판정에 말자의 편은 아무도 없었던 것.

이듬해 1월 말자는 중상해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당방위가 불인정된 것. 그리고 노 씨는 징역 6월에 집유 2년으로 강간 미수 혐의는 끝내 다뤄지지 않았다. 성폭력 피해자가 더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 것.

이후 6개월 만에 풀려난 말자. 말자의 아버지는 어린 딸을 구하기 위해 노 씨와 결국 합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반 세기가 지나고 칠순을 앞둔 할머니가 된 말자 씨는 자신이 겪은 일을 방송통신대 동기 향희 씨에게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그리고 너무 억울하다며 한을 풀어 달라고 호소했다.

말자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에 향희 씨는 사건에 대해 조사했고 너무 부당하고 억울해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물방울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바위를 뚫듯이 자신이 하나의 물방울이 되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은 대한민국 사법부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했다. 그리고 힘을 모으기 위해 한국 여성의 전화를 찾았다.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일어나던 2018년, 한국 여성의 전화는 이 사건을 바로 잡는 것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두 사람을 돕기로 했다.

그리고 말자 할머니에게 당시 판결문을 찾아 보냈다. 당시 판결문에는 말자 씨가 노 씨로부터 키스를 하게끔 충동을 일으켰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잣대를 들어 말자 씨를 가해자로 만들었다.

이후 말자 할머니는 재심을 맡아줄 변호사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지금의 법으로는 힘들다는 이야기만 하는 변호사들. 그런데 그때 재심을 맡겠다는 김수정 변호사가 등장했다.

그는 100% 무죄 희망 보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변호인단이 구성되고 사건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기록이 전혀 남지 않은 상황에 말자 할머니의 기억에 의존해 증거들을 찾았다. 당시 검찰은 구속 기소를 하기 두 달 전부터 불법 구금을 하고 불리한 진술 강요, 가해자와 혼인 강요, 순결성 감정까지 2차 가해를 했다. 그리고 이는 당시 기사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당시 노 씨가 언어 장애인이 됐다며 말자를 중상해죄로 처벌한 검찰과 재판부. 하지만 조사 결과 노 씨는 장애를 입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게 모은 자료들과 증거를 가지고 사건 이후 56년이 되는 날인 2020년의 어느 날 재심 청구를 했다. 마이크를 잡고 취재진 앞에 선 말자 할머니는 "저의 억울함을 풀고 정당방위가 되어서 무죄를 원하는 바이다.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우리 후손들에게는 이런 오점을 남겨선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법원은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새로운 증거도 불인정하고 검사와 판사의 불법 행위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일어났으면 죄가 없었을 것이라 인정하면서도 지금의 잣대로 그때의 판결을 번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말자 할머니는 "법의 가장 근본이 되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별도 못 하는 우리 사법이 후세들에게 부끄럽다, 항고하겠다"라며 즉시 항고했다. 그러나 7개월 후 재판부는 즉시항고를 기각했다.

이에 말자 할머니는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그리고 여러 단체들은 해당 사건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고 할머니를 응원하는 많은 이들은 재심 개시 촉구 1인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말자 할머니도 재심 촉구 탄원서를 직접 작성해 법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2024년 12월, 원심 파기 환송으로 이후 2025년 7월 23일 재심 첫 공판이 진행됐다. 유죄 판결 22,107일 만의 재심에서 재판부는 최말자의 무죄를 선언했다.

특히 검찰 측에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고 정당방위를 인정하고 무죄를 구형했다.

이에 말자 할머니는 재판정에서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잊지 말아 달라며 후손들이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대한민국 법이 그렇게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지난 9월 10일 재심 최종 선고 공판에서 대법원은 최말자 할머니의 무죄를 확정했다.

마지막 소원이라며 2018년 처음으로 꺼냈던 그의 소원이 7년 만에 이루어진 것.

할머니와 함께 싸운 향희 씨는 61년을 거슬러서 용기를 낸 최말자 할머니에게 "참 잘했어요, 너무 잘하셨어요, 그 한마디 해드리고 싶다"라고 말해 보는 이들까지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싸운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진심으로 고맙다고 손잡고 머리 숙여 인사하고 싶다는 말자 할머니.

그는 "참 좋은 인연을 만나서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서 여기까지 나를 이끌어 주고 도와주는데 말로써 어떻게 표현하겠냐. 내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인연이다. 영원히 잊지 못한다"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시간 너무나 아픈 시간을 버틴 최말자 할머니. 하지만 할머니는 그들이 내 곁에 있기에 그럼에도 내 삶은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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