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사랑과 결혼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행복과 직결되는 중요한 이슈다. 두 가지 모두 선택의 문제지만 후자는 제도로 엮인다는 측면에서 그 중요도를 크게 인식한다.
국내 한 결혼정보회사는 2024년 한 해 동안 혼인 건수가 전년 대비 14.8%가 급증했다는 데이터를 내놓았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인 대한민국에서 꽤 긍정적인 데이터다. 결혼 시장은 실제로 번성 중일까. 아마도 대다수 미혼 남녀들은 결혼이 단순 수치로 증가와 감소를 논할 수 있는 화두가 아니라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태평양 건너의 나라 역시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사랑과 결혼을 화두로 한 영화는 새롭지 않지만 미국, 그것도 대도시의 상징인 뉴욕에 사는 결혼 적령기 남녀의 결혼에 대한 속내를 들여다본 '머티리얼리스트'는 꽤나 흥미롭다.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도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두고 미혼 남녀들은 저마다의 사정과 기준으로 계산기를 두드린다.

루시(다코타 존슨)는 뉴욕에서 커플매니저로 일하며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다. 고객의 결혼식에 참석한 루시는 근사한 외모와 탄탄한 재력까지 겸비한 해리(페드로 파스칼)를 만나게 되고 동시에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던 전 연인 존(크리스 에반스)과도 재회하게 된다.
첫 만남 이후 해리는 적극적으로 루시에게 다가오고, 루시는 해리와의 만남을 통해 황금빛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그러던 도중 충성 고객에게 예상치 못한 악재가 터지며 심리적으로도 큰 내상을 입게 된다. 이 일로 인해 루시의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기며 전 남친 존과 다시 가까워지게 된다.
'머티리얼리스트'는 뉴욕의 결혼 정보회사에서 일하는 한 여성의 일과 사랑을 통해 도시 남녀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풍속도를 그린다. 영화는 주인공 루시의 직업 세계와 연애담 두 축으로 구성돼 있다. 공통분모는 '결혼'이라는 화두다.

루시는 미혼 남녀의 결혼을 중개하는 직업을 가졌다. 결혼정보회사의 커플 매니저라는 루시의 직업 세계는 그야말로 뼈 때리는 현실을 반영한다.
결혼은 일종의 거래이자 계약 관계이고, 미혼 남녀가 최고의 계약을 하기 위해 경쟁하는 세계는 '시장'으로 통용된다. 그 시장에서 미혼 남녀의 '조건'은 팔리는 물건이냐 안 팔리는 물건이냐의 기준이다. 조건은 키, 얼굴, 연봉의 수준과 자동차, 집의 보유 여부 등의 항목으로 나눠지고 여성은 미모와 나이, 남성은 재력을 최우선시된다. 이 기준은 보이지 않은 등급으로 환산돼 커플 매칭의 커트라인을 형성하게 된다.
루시는 회원들의 조건을 분석하고 등급을 매기며, 급을 맞추는데 능숙한 인물이다. 결혼을 성사시킨 커플만 9쌍이다. 루시 역시 결혼 적령기의 미혼 여성이다. "남자는 재력!"이라고 외쳐온 그녀에게 일생일대의 남자가 다가왔다. 부자로 태어났고, 부자로 컸고, 부자로 살아갈 해리는 루시가 일하는 업계에서는 이른바 '유니콘남'으로 불리는 남자다.

영화를 연출한 셀린 송 감독은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는 작가적 태도로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데뷔작 '패스트 라이브'가 유년시절의 기억을 기반으로 한 첫사랑 로맨스라면 '머티리얼리스트'는 뉴욕에서 커플매니저로 일하면서 보고 느낀 현대 연애와 결혼 시장의 풍속도를 날카로운 시선과 풍자적인 유머로 담아냈다.
실제 업계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각본에 담아낸 만큼 생생한 에피소드와 대사발이 돋보인다. 연애와 결혼을 바라보는 싱글 남녀의 심리도 사실적이다. 한국 배우와 한국어가 등장했던 전작보다 미국 배우와 영어가 등장하는 '머티리얼리스트'의 정서가 오히려 와닿을 정도로 동시대 한국 사회의 어떤 풍경과 일치한다.
커플 매니저가 직업의 전문성과 풀의 수혜를 누려 육각형 남자와 결혼하는 전개라면 뻔한 영화다. 여기에 가난 때문에 헤어졌던 남자친구가 눈에 밟히는 전개 역시다. '머티리얼리스트'는 중반까지 꽤 신랄하게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다가 반듯한 결말이라는 판타지로 경로를 이탈하고 만다.


이 영화를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건 중반을 기점으로 주인공의 가치관이 속절없이 바뀌기 때문이다.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신분 상승을 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도 판타지지만, 자신의 속물성을 부정하지 않았던 인물이 갑자기 '사랑이 최고'라고 외치는 결말은 더 황당한 판타지로 여겨진다.
물론 루시의 가치관이 조건에서 사랑으로 치환되는 계기가 되는 어떤 사건이 등장한다. 문제는 설득력이다. 감독의 일관되지 않은 스탠스 때문에 이 영화가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 모호해지는 순간이 있다.
"알면서 왜 이래?"라고 당차게 외치다가 "내가 어리석었어"라며 반성문을 쓰는 주인공의 태도 변화는 '속물들'(Materialists)라는 영화의 제목에 걸맞지 않은 자기반성이다. 현대인의 폐부를 찌른 흥미로운 고찰이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전형적 판타지와 철없는 낭만 앞에서 힘을 잃었다. 충분히 재밌었지만 더 좋은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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