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0일(목)

영화 스크린 현장

[빅픽처] PC 논란 '백설공주', 피부색이 문제가 아니다

김지혜 기자 작성 2025.03.19 11:37 수정 2025.03.19 13:01 조회 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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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개봉도 전에 예비 관객들의 색안경 낀 시선에 직면했다. 디즈니 개봉작으로는 이례적으로 미국, 영국 등 주요 국가에서 인터뷰, 레드카펫 등 홍보 행사를 대폭 축소했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개봉 전까지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백설공주'에 관한 이야기다.

디즈니 실사 뮤지컬 영화 '백설공주'가 오늘(19일) 국내에 개봉했다. '백설공주'는 악한 '여왕'에게 빼앗긴 왕국을 되찾기 위해 선한 마음과 용기로 맞서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그린 영화. 독일 그림 형제의 동화 '백설공주'(1812)를 원작으로 하며, 디즈니의 1937년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재해석했다.

디즈니의 실사 프로젝트는 '미녀와 야수'(2017), '알라딘'(2019), '라이온 킹'(2019) 등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최근 들어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인종과 성별 종교 등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을 배척하는 정치적인 올바름)를 통해 고전의 고루함을 타파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눈총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흑인 인어공주'를 내세운 '인어공주'(2023)였다. 이 작품은 개봉 전부터 '미스 캐스팅' 논란에 휩싸이며 디즈니 팬덤의 비판을 받았고, 개봉 후에는 기대 이하의 완성도와 재미로 흥행에 실패했다.

백설공주

'백설공주'는 '라틴계 백설공주'를 내세웠다. 타이틀롤을 맡은 레이첼 지글러는 콜롬비아-폴란드계 배우다. '눈처럼 하얀 피부에 피처럼 새빨간 입술, 까만 머리를 가진 소녀'로 묘사한 원작 속 백설공주와는 거리가 있는 외모다. '인어공주'와 마찬가지로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부정 여론이 높았다.

원색적인 비판에 시달린 지글러 역시 '미스 캐스팅' 논란에 맞서며 불필요한 설화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멕시코 보그와의 인터뷰였다. 이 인터뷰에서 지글러는 "왕자가 공주를 말 그대로 스토킹 하는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이다"라고 말해 디즈니 팬덤으로부터 원작을 모욕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개봉도 전에 논란과 설화에 시달린 작품인 만큼 영화의 대한 궁금증이 솟구쳤다. 지난 18일 기대와 우려 속에 베일은 벗은 '백설공주'는 '인어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피부색'이 문제인 영화가 아니었다.

백설

영화는 오프닝에서부터 백설공주(Snow White)라는 이름의 정의를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져서가 아니라 하얀 눈보라가 치던 밤에 태어났다는데서 비롯됐다는 영화만의 해석을 강조한다. 그러나 영화는 주인공의 피부색을 바꾸는 파격을 선택했을지언정 이야기와 메시지를 구현하는 데 있어 진화나 진보가 보이지 않았다. '왜 다시 '백설공주'인가'에 대한 질문에 "뮤지컬"로만 답을 하고 있었다.

헐거운 서사와 생동감 없는 캐릭터, 선택적이고 어색한 PC주의에 그친 인상이다. 이 작품이 '500일의 썸머'(2010),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012)을 만든 마크 웹 감독이 연출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본의 빈약함은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물론 '백설공주'라는 동화를 연출하는 감독에게 '500일의 썸머' 같은 독창적인 스토리텔링과 구성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원작의 틀은 유지하되 최대한 욕먹지 않을 PC주의를 구사하는데 그친 인상이다. 디즈니 실사 영화에서 감독의 역량이라는 것이 크게 발휘되긴 힘들겠지만 마크 웹의 개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건 아쉽다.

백설

동화 '백설공주'를 상징하는 대사는 "Mirror, mirror, who's the fairest of them all?"("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다. 여왕에 의해서 발화되는 이 대사는 외형적인 미(美)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상징하는 대사이며,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내면을 갖춘 사람이 진짜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반어적으로 드러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동시에 독자의 관점에서 기괴한 공포심을 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도 이 장면은 여러 번 등장하는데 그 임팩트가 약하다. 미에 집착하는 여왕의 모습이 시대착오적이라 생각해서 장면의 중요성을 부러 축소한 인상이다. 그러다 보니 여왕을 연기한 갤 가돗은 이미지 캐스팅으로는 가장 성공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카리스마와 존재감이 떨어진다.

영화의 모든 캐릭터를 배우가 연기하지만 일곱 난쟁이는 CG로 구현했다. 다양한 연령대와 인종으로 캐릭터를 구성했지만 사람 배우와 CG 배우가 한 화면에 있을 때의 이질감은 피할 수 없었다. CG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실제보다 더 정밀하고 생동감 넘치는 동물 묘사다. 

'백설공주'는 공주의 피부색을 바꾸는 파격을 선택했지만 남성에 의한 구원 서사 자체는 바꾸지 못했다. 독사과를 먹고 쓰러진 백설공주가 눈을 뜨는 건 백인 남성의 키스를 통해서다. 물론 남자 주인공 역할을 축소하고 공주의 주체적 움직임을 강조하고자 했지만 이 역시 대단한 효과를 획득하지 못한다.

백설

영화가 내세우는 백설공주의 '선한 마음'은 모호하며, '용기'는 영화적 구체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백설공주가 갑자기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여왕과 맞서 싸워야만 용기가 표현되는 것은 아니나 말 몇 마디로 거대 악인 여왕을 무너뜨리고, 군중들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마무리는 맥 빠지는 선택이다.

뮤지컬 영화답게 음악에 많은 공을 들였다. 레이첼 지글러의 가창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특히 메인 테마곡인 '간절한 소원'(Waiting On A Wish)을 부를 때 빛을 발한다. 음악은 영화 '알라딘' '위대한 쇼맨' '라라랜드' 등의 OST로 사랑을 받은 벤지 파섹과 저스틴 폴이 맡았다. 그래서인지 다인종으로 구성된 군중이 주도하는 후반부 군무 장면의 음악은 '위대한 쇼맨'의 'This Is Me'의 분위기도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 영화로서의 매력이 '백설공주'의 단점들을 상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백설공주'는 '인어공주'와 비슷한 문제점을 드러내며 디즈니의 에버그린 전략(새로운 지식재산권을 추가해 독점 기한을 늘려가는 전략)에 대한 의구심을 강화한다. 

실사 프로젝트는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다. '인어공주'는 2억 5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으나 손익분기점(6억 달러)에 한창 못 미치는 4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데 그쳤다. '백설공주'마저 흥행에 실패한다면 디즈니는 실사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대한 재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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