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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살인자의 기억법', 소설의 매력이 휘발되다

작성 2017.09.08 16:18 조회 459
살인자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연쇄살인범'. 따로 놓고 보면 기억 상실은 낡은 설정이고, 연쇄살인범은 새롭지 않은 캐릭터다. 그러나 두 가지가 한데 어우러지니 느낌이 달라진다.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의 살인범이 기억을 잃은 환자로 그려지다니. 무슨 이야기가 펼쳐질지 호기심이 솟구친다.

2013년 발간된 김영하 작가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기로 큰 사랑을 받았다. 150페이지 분량의 경장편 소설인 이 작품은 짧고, 쉽고, 재밌다. 첫 장을 넘기면 앉은 자리에서 한 시간 안에 완독이 가능할 정도로 흡입력이 높고, 긴장감도 넘친다.

영화계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등에 이어 김영하의 소설이 또 한 번 영화로 재탄생했다. 영화의 메가폰은 '구타유발자들', '용의자'를 만들었던 원신연 감독이 잡았고 설경구, 김남길, 설현이 주요 배역을 맡았다.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고 해서 영화가 소설과 똑같을 필요도 없고, 똑같이 만들 수도 없다. 방대한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데 있어 압축의 묘와 효율적 각색은 중요하다.

영화와 소설은 매체의 성격도 다르고 매력도 다르다. 활자의 예술이 시·청각의 예술로 업그레이드되는 만큼 소설보다 영화가 더 낫기를 기대한다. 영화는 이야기의 인지도를 등에 얻는 대신 독자라는 참견자도 얻는다.

살인자

'살인자의 기억법'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원작의 매력이 휘발된 이야기에, 클리셰가 자리했다. 영화는 소설의 모호함을 선명하게 바꿨다. 소설에서 병수가 특별한 동기 없이 '보다 완벽한 것'을 위해 살인을 했다면, 병수는 '세상에 사라져야 할 쓰레기'를 청소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주변 캐릭터도 살을 붙였다. 소설에서 상징적인 역할이긴 하지만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던 캐릭터 태주(원작은 '주태')를 병수와 대립각을 세우는 중심인물로 격상시켰다. 그리고 은희 역시 병수의 행동에 강력한 동기를 주는 관계로 등장한다. 결말의 방향도 달라졌다. 기억과 망각을 오가는 병수는 독자(소설)와 관객(영화)을 다른 길로 이끈다.

영화는 스릴러 색채가 뚜렷하다. 명확한 선악구도, 확실한 클라이맥스도 있다. 그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안전하고도 확실한 선택이다. 문제는 결과물에서 영화만의 개성과 매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보통의 범죄 스릴러 영화가 사건의 발생과 범인의 추적을 통해 긴장감을 쌓아가는 것과 달리 영화 초반부터 많은 정보를 오픈한다.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선택을 했다면, 밀도 높은 전개를 보여줬어야 한다. 그러나 영화는 예측 가능한 전개로 이야기를 지루하게 만든다. 기억과 망각이라는 소재를 촘촘하게 설계하며 긴장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살기법

영화의 안전한 선택에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은 또 하나 있다.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를 펼치지만 작가가 인물에게 일정한 거리 두기를 한다. 영화는 병수에게 행동의 동기를 일으키는 사연과 드라마를 부여해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을 응원하게 한다. 주인공은 옳아야 한다는 윤리적 강박이 이야기의 매력을 되레 희석시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이 이상한 응원은 영화를 보고 나서 찜찜함을 남긴다.

설경구의 연기는 노력의 정도가 눈으로 보인다. 메소드 연기의 달인답게 분장에 의존하지 않고 신체에 변화를 주면서 '늙음'과 '피로'를 표현했다. 그는 영화를 위해 10kg 이상 체중을 감량했다.

불을 뿜어내는 듯한 특유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감정의 강약을 조절해 인물의 내면을 보다 섬세하게 표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언젠가부터 설경구의 연기는 덧셈보단 뺄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김남길도 드라마틱한 변신을 시도하며 연기력을 뽐내지만, 캐릭터 자체의 매력이 두드러지진 않는다.

영화로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소설을 읽어보길 권한다.

9월 6일 개봉, 상영시간 118분, 15세 이상 관람가.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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