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2013년 설경구는 그 어느 해보다 바빴다. 지난해 연말 개봉해 연초까지 상영한 '타워'를 시작으로 '감시자들', '스파이' 그리고 최근 개봉한 '소원'까지 대략 3개월에 한편씩 신작을 내놓으며 쉼없이 관객들과 만났다. 이 모든 건 개봉일이 겹치면서 발생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배부른 한해로 기록 될 만하다.
블록버스터와 액션, 스릴러 등 긴장감을 요하는 장르 영화를 하던 설경구에게 '소원'은 특별한 영화다. 화려한 볼거리보다 인물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감성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소원'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 소원이네 가족의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그린 영화. 실화를 소재로한 영화인만큼 결정이 쉽지는 않았다. 실제로 설경구는 "왜 고통을 잊고 잘 살아 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 상처를 주나" 싶어 한차례 출연을 고사했다.

이 영화의 가치를 먼저 알아본 것은 아내 송윤아였다. 설경구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고 시나리오를 제대로 읽어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처음부터 꼼꼼히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감정이 너무 깊어서 한번에 읽지는 못했다. 사고 이후의 이야기들이 따뜻해 너무나 좋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이준익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뵙기를 요청했다. 설경구는 그 자리에서 대뜸 "감독님 무슨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들려고 하세요?"라고 물었다. 이준익 감독에게 돌아온 말은 "상처는 덮는다고 되는게 아니다. 까발려서 치유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였다. 감독님의 진심을 느낀 설경구는 영화를 찍기로 마음 먹었다.
설경구가 맡은 '동훈'은 딸 '소원'의 회복 과정을 묵묵히 지켜본다. 엄마 '미희'가 딸의 상처와 치유 과정에 오열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는 설경구가 의도한 '절제의 연기'였다.
"둘 다 울면 안되겠다 싶었다. 한명이라도 버티고 꾹참는 사람이 있어야 소원이네 가족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동훈의 경우 상처 입은 소원이에게 실수로 오해를 산 상태였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게 딸에게 다가갔다. 때문에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속 깊은 부성애를 드러내고자 했다"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코코몽 장면은 설경구가 직접 인형탈을 쓰고 연기했다. 그는 "몽롱한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면서 "그 장면에서 아빠와 딸이 상처 이후 처음으로 교감을 나눈다. 나 역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라고 말했다.
타이틀롤을 맡은 이레와의 호흡도 무척이나 중요한 영화였다. 설경구는 "더없이 좋은 파트너를 만나 나 역시 좋은 시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면서 "빨대같이 빨아들이는 그 흡수력은 놀라웠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순수함을 잃지 않는 연기자가 되길 바란다"고 덕담을 남겼다.

설경구는 '소원'을 하면서 영화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통해 '순간 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처음엔 이준익 감독님이 왜 나한테 이 영화를 줬을까 했는데, 나중엔 나에게 이 작품을 줘서 고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촬영 현장에서의 호흡이 너무나 좋았지만, 개봉을 앞두고는 적잖은 걱정을 하기도 했다. 관객들이 이 영화의 진심을 제대로 알아봐줄지에 대한 우려였다. 다행히도 전국 200만 관객들은 영화에 담긴 감독과 배우들의 진심에 공감했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올 한해 호흡이 빠른 영화들만 했다. 긴 호흡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데 '소원'과 같은 작품을 만났다. 올해 남은 기간 동안은 휴식을 가질 예정이다. 올해의 마지막 작품이 '소원'이여서 너무나 다행이다"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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