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영화 스크린 현장

꼰대 NO, 인생 선배의 삶의 지혜…'윤며드는' 윤여정 어록

김지혜 기자 작성 2021.04.27 09:58 수정 2021.04.27 11:33 조회 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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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일흔네 살. 누군가는 인생이 저무는 나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삶의 연륜과 일에 대한 경험이 쌓일수록 무르익어 자신만의 세계를 공고히 하는 사람들은 보면 "멋있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도전과 모험으로 점철된 삶을 살며 일흔넷의 나이에 화양연화를 맞은 윤여정이 그렇다.

인생의 희비 속에서 자신만의 철학과 연기 가치관을 확립한 윤여정은 화법에서도 확고한 신념과 여유로운 위트가 묻어난다. '윤여정다움'을 느낄 수 있는 주옥같은 어록을 모아봤다.

윤여정

◆ "배우는 돈이 급할 때 연기를 제일 잘한다"

영화 '바람난 가족'(2004)에 출연해 파격적인 연기를 펼친 윤여정은 2009년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배우는 돈 필요할 때 연기를 제일 잘한다"라는 솔직한 말을 한 바 있다.

윤여정이 맡은 역할은 시한부 남편을 두고 자신의 성욕을 감추지 않는 중년의 어머니였다. 설정의 파격성과 적잖은 노출 탓에 많은 중년 여배우들이 출연을 꺼렸던 작품이었지만 윤여정은 이미지 변신을 서슴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윤여정은 "당시 집수리를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나 역시 꺼려졌지만 돈이 너무 급해 결국 수락했다"고 말했다.

'연기 활동=돈'이라는 가벼운 인식을 줄 수도 있는 말이지만, 직업으로서의 배우 역시 여타 다른 직업인의 가장 본질적인 동기부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한 발언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배우는 돈이 급할 때 제일 연기를 잘한다. 예술가도 배가 고프고 돈이 급할 때 좋은 작품을 만든다. 훌륭한 화가들을 봐라. 명작들은 배고플 때 나온다. 그래서 예술이 잔인한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여정

◆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어"

윤여정은 2013년 故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과 함께 '꽃보다 누나'라는 여행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크로아티아 여행을 함께 갔던 이미연이 선배인 윤여정에게 "선생님은 막상 작품에 들어갔는데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 하세요?"라고 묻자 "똥 밟았다 생각해. 그럼 어떡해? 빼라고 해? 그냥 해야지. 근데 다 잃는 것 같아도 사람은 또 얻어. 어떤 경험이라도 얻는 것은 있기 마련이야"라고 답했다.

이어 "아쉽지 않고 아프지 않은 인생이 어딨어. 내 인생만 아쉬운 것 같고 내 인생만 아픈 것 같고 그런데... 다 아파. 다 아프고 아쉬워. 내려놓는 거지. 하나씩 내려놓고 포기하는 것, 나이 들면서 붙잡지 않는 것. 웃고 살아야지. 난 웃고 살기로 했으니까"라고 오랜 경험을 통해 얻은 인생에 관한 철학을 전했다.

또한 '나이'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윤여정은 "육십이 돼도 인생을 모른다. 나 67살이 처음이야. 알았으면 이렇게 안 하지. 처음 살아보는 거기 때문에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고. 계획을 할 수가 없어. 그냥 사는 거야. 그나마 하는 거는 하나씩 내려놓는 것, 포기하는 것. 나이 들면서 붙잡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꽃보다 누나'는 윤여정이 나영석 사단과 함께 한 첫 번째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윤식당', '윤스테이' 등의 예능 행보를 이어갔고 윤여정만의 매력은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솔직한 화법과 꾸밈없는 행동 등은 '윤여정다움' 그 자체였다.

◆ "주인공만 하겠다고 하는 건 바보 같다"

2017년 '센스8'에 출연하며 미국 드라마에 첫 도전한 윤여정은 현장 토크쇼 '택시'와의 인터뷰에서 배역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윤여정은 "어릴 때는 주인공 해야지 했다. 조금씩 한 계단 한 계단씩 오르다 보면 멋진 기회가 오게 된다. 주인공만 하겠다고 하는 건 바보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윤여정은 미국 드라마에 첫 도전하면서 주인공을 고집하지 않았다. '죄수' 역할의 조연이었지만 도전에 의미를 두고 악조건을 감수했다. 70대의 나이에도 배역의 크기와 경중을 따지지 않는 도전정신이 오늘날 윤여정을 있게 한 셈이다. 모든 배우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문명

◆ "내 마음대로 하는 환경에서 일하면 괴물이 돼"

지난 3월 SBS 웹콘텐츠 '문명특급'과의 인터뷰에서 '미나리' 미국 로케이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였지만 촬영장에는 90%가 미국인으로 이뤄졌다. 저예산 독립영화 환경은 한국 영화 현장과 달리 모든 것이 낯설고 척박했을 터.

윤여정은 "'아 난 여기서 진짜 Nobody구나' 싶었다. '연기를 잘해서 얘네들한테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게 도전이지 다른게 도전이 아니다. 내 마음대로 하는 환경에서 일하면 괴물이 될 수 있다. 그게 매너리즘이다. 그런 환경에서 일하면 내가 발전을 못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 "사랑은 자동차 사고와 같다"

윤여정은 '미나리'의 미국 배급사 A24와 가진 인터뷰에서 사랑관을 밝히기도 했다.

"사랑은 자동차 사고와 같다. 당신이 어떤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면 당신의 마음도 잃어버리고 눈도 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사라지게 될 거다. 물론 때로는 고통스럽고 아프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벗어나게 되면 성숙한 사람이 될 거다.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건 꿈일 뿐이다"

윤여정은 1974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해 미국으로 넘어갔다. 아들 둘을 낳고 10년이 넘는 결혼 생활을 했으나 배우자의 외도로 1987년 이혼했다. 이후 공식 석상에서 결혼 생활에 대한 언급이나 전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한 바는 없다. 그러나 사랑에 관한 개인의 철학을 담은 이 말에서 인생의 굴곡과 사랑의 희비를 엿볼 수 있다.

윤여정

◆ "한국의 메릴 스트립? 한국 배우 윤여정입니다"

'미나리'의 아카데미 레이스를 앞두고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한 기자가 "한국의 메릴 스크립으로 불리던데?"라고 묻자 윤여정은 직접 영어로 "그분과 비교된다는 데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저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배우다. 제 이름은 윤여정이다. 저는 그저 저 자신이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의 명배우와의 비교에 대해 민망해하면서도 누구와 비교되기 전에 윤여정으로 불리고 싶다는 빛나는 자존감을 드러낸 말이었다.

지난 25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돼 무대에 올라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에서 온 윤여정입니다. 유럽 분들은 제 이름을 여영이라고 하거나 그냥 정이라고 부르는데, 오늘만은 모두 용서해드리죠.(웃음)"라는 위트 넘치는 말을 남겼다.

◆ "남성과 여성, 피부색으로 구분 말자…무지개도 일곱 색깔"

윤여정은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난 직후 주최 측인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아시아 영화의 약진과 할리우드의 다양성 확대를 묻는 질문에 "심지어 무지개도 7가지 색깔이 있다. (무지개처럼) 여러 색깔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과 흑인, 황인종으로 나누거나 게이와 아닌 사람을 구분하고 싶지 않다"면서 "우리는 따뜻하고 같은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림"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며 "서로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여정

◆ "'최고'란 말 싫다…모두 '최중'으로 살면 안되나"

아카데미 수상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현지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난 윤여정은 "지금이 최고의 순간인 것 같냐"는 질음에 "최고의 순간이라는 건 없다. 나는 최고라는 말이 참 싫다. 영어 잘하는 애들이 나에게 충고한다. '경쟁을 싫어한다'는 걸 말하지 말라고. 그런데 '1등', '최고' 이런 말을 하지 말고 '최중'이 되면 안 되나. 다 같이 살면 안 되나"고 되물었다.

이어 "아카데미가 다는 아니지 않나. 동양인에게 아카데미 벽이 너무 높아서 트럼프가 세운 장벽보다 높다고들 하던데... 꼭 최고가 되려고는 하지 말자. 최중만 되어도 되지 않나. 그냥 동등하게 살자. 지금이 최고의 순간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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